2009. 9. 28. 18:16 ▶ nomad/'09 Japan: Tokyo

카구라자카를 알게 된 건 역시 일본 드라마 <친애하는 아버님께拜啓, 父上樣>를 통해서였다.
방영 당시엔 가이드북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카페 중심의 일부 책에 간간히 소개되더니 최근엔 꽤 많은 정보가 있는 듯하다.
고관들의 자택과 요정料亭들이 모여있던 곳이라 특유의 전통적인 분위기와 고즈넉함이 남아있는데다
우리나라 서래마을처럼 프랑스인의 거주가 많아 괜찮은 베이커리, 레스토랑들이 있어서..
일본 내에서도 드라마 방영 이후 '도쿄에 이런 곳이 있었냐'며 찾는 국내인이 많았다니 역시 티비의 힘은 대단하다.

<친애하는 아버님께>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자면 일본에 대한 내 로망을 한번에 보여준 작품이랄까.
오랜 역사가 있는 가게나 '골목'의 즐거움이 있는 마을, 하다못해 주인공의 낡아빠진 자취방까지도 로망이었다.
(참고로 그 자취방은 공동욕실과 화장실을 써야 하고 우풍이 작렬하는 게 눈에 보이는.. 그야말로 쓰러지기 직전의 단칸방이었다.
저런 곳에서 꼭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으니 참으로 대책없이 용감무쌍한 시절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어렸기 때문인가?)
여튼 드라마 배경처럼 추울 때 가려고 아껴둔 스폿이었는데, 별다른 계획없이 찾아온 돌고래와 동생을 위해 내놓고 말았다.


카구라자카神 楽坂 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이 동네는 크고 작은 비탈길 일색의 언덕마을인데
동양적인 골목의 향취를 신기해하는 서양인이 아니라면.. 기대치가 클 필요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평온하지만 나름 관광지인데다, 알짜배기 매력을 당일치기 뜨내기가 파악하기는 좀 힘들기도 하고.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몇 번이나 쓰지만 대도시의 여행(아니 관광)이라는 게 별로 취향이 아니라는 데 있을 것이다.
더구나 혼자면 모를까, 여자들끼리 도시를 돌아다닌다는 건 줄곧 사고 먹고 찍는 것의 연속이기 마련이라.
외국이라는 특수성이 있다손 치더라도 일본에 대해 잘 모르는 둘과 이미 서울처럼 익숙해진 내가 느끼는 차이는 상당한 것이었다.


점점 글이 부정적이 되어 가는데..;
카구라자카는.. 좋은 동네다.


...-_-


설명은 그만하고 몇 장의 사진을 보자면..






































순서는 좀 섞였는데.. 큰 길가에서 메인스트릿(?)으로 들어간 뒤부터 일부 골목들. (비가 오다가 맑게 갰다)
여느 동네와 큰 차이점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카구라자카의 '진짜' 골목은 이것.

















마치 세트장 같은 골목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드라마에 나오는 곳들을 보고 싶기도 했는데 실제로 가보니 거기가 거기 같아서..
의심되는 곳에서 사진 한 장 박긴 했는데 자신은 없다. (아, 드라마의 배경이 된 요정 사카시타는 찾았다. 물론 실제 요정은 아니고 외관만 빌려준 것으로 안다)








미묘하게 중국의 느낌인 꼬치가게에서 닭꼬치도 먹고.. (의외로 정말 정말 맛있었다)











거리 전체를 환하게 만드는 꽃다발 구경에








드라마를 봤다면 모를 수가 없는 비샤몬텐. 신사가 처음인 두 명은 신기해했으나 난 오미쿠지도 패쓰..
그나마 좋았던 것은 역시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이자 카구라자카 명소인 카날 카페였다.





찾기는 무지 쉽다. 강변에 있으니 강쪽으로 가기만 해도 성공.





입구에서 주문을 하고





슬쩍 둘러보고는





원하는 곳에 앉으면 된다.





사진에서도 느껴지지만 카페 보다는 야외 파티에 어울리는 장소.








이곳이 유명한 건 순전히 위치 때문이다. 강변이기도 하고, 건너편을 지나가는 전차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맨날 보는 전차가 뭐가 신기하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빌딩과 지상철이 지나는 도심 한가운데에서의 여유? 뭐 그런 컨셉이라는 홍보가 되겠다.





누가 타는 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배도 있고.. 카날 주변을 벚나무가 둘러싸고 있어서 한창 꽃놀이 할 시즌에는 자리 잡기가 어렵다고 한다.








자리값이라는 건 커피를 마셔보면 안다. 브라우니랑 머핀은 둘째치고 커피가 정말.. 드럽게 맛없었음.





옆테이블에 있는 스패니쉬 계열의 아가였는데(사진으론 잘 안나타나는듯? 애 아빠보면 딱 아는데)
어찌나 잘 웃고 잘 놀고 건강해 보이는지. 돌고래와 함께 후안이니 카를로스니 산 호세 따위의 이름을 마음대로 붙이며 예뻐해줬다.


여튼 카구라자카를 짧은 시간 둘러본 나의 결론은 추운 어느 날 <친애하는 아버님께>의 OST를 귀에 꽂고 '혼자' 거닐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본에 대한 이질감이 오래 전에 사라진 상황에서 매력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주 가서 확인해보는 방법밖에 없으니까.

posted by 만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