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27. 00:11 ▶ nomad/'09 Japan: Tokyo

나는 동네에 대한 로망이 있다.
내게 동네라는 것은 단독주택, 그러니까 누구네 집, 누구네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집들이 있고..
작지만 주인아저씨 혹은 아줌마와 대면하는 가게들이 있고.. 무엇보다 골목이 있는 그런 풍경.
각종 브랜드의 아파트들이 모여있고 대형 마트가 몇 개나 되는 지금의 동네에
거의 20여년째 살면서 정을 못 붙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일본에 있을 때 맨션만큼이나 좋았던 것이 동네.
일본 지인들은 아무 것도 없는 여기가 뭐가 좋냐고 했지만.. 난 그 '아무 것도 없음'이 좋았다.
관광객이라곤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는.. 그냥 도쿄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
큰 대로변에는 내가 사는 맨션을 비롯 나름 큼지막한 회사 빌딩들이 있는데 한 블럭만 넘어가면 조용하기 짝이 없는 동네라..
소박한 동네 주민들의 모습도 회사 근처에서 밥을 먹고 한잔 하는 샐러리맨들의 모습도 실컷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일본 특유의 깔끔함도 좋았고.. 사실 일본이라고 해서 모두 그렇지 않다는 건 신오오쿠보에 가서 처음 알았다..;;
한국인 밀집 지역이라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가보지 않았던 곳.. 민박 때문에 갔다가
내가 지금까지 본 도쿄와는 또 다른 모습에 좀 당황하기도 했었다.

여튼 그런 동네 사진을 몇 장 올린다. 사실 지금 보니까 진짜 찍어야될 걸 안찍어서 좀 아쉬움..
다른 동네도 마찬가지지만 작지만 알찬, 주인의 내공이 느껴지는 술집들이 골목에 숨어있는데.. 그런 가게들도 하나도 못 찍었고..
상점가에서는 너무 평범한 일상 속의 사람들이 있다보니.. 카메라를 들이대기가 좀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 코코이치. 첫날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걸 발견하고 기뻐서 찍었다.
뭐 지금은 한국에도 들어왔지만.. 개인적으로 한국의 코코이치는 가지 않는다. 맛 때문이 아니라.. 뭔가 심하게 다른 분위기 때문에.
일본의 코코이치는 점심 때.. 혹은 퇴근 길에 손쉽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그런 소박한 가게의 느낌이다.
실제로 늦게 가보면 혼자서 신문을 읽거나 간단히 무언가를 하며 카레 한그릇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영업시간 역시 새벽 1시까지.
나도 가끔 저녁 대충 먹었는데 늦게까지 일했을 때.. 돌아가는 길에 들러서 먹곤 했다.
한국에 온 일본지인들이 코코이치를 보고 '완전 오샤레(고급스런, 멋낸, 화려한..) 코코이치'라며 놀랐던 것도 무리가 아님.





도로 옆을 따라 쭉 나오다보면 이 거리가 나오는데.. 일찍 열고 일찍 닫는 도토루도 있고, 굉장히 좋은 느낌의 킷사텐도 있고..
사진에선 전혀 안 보이지만 코너에 있는 타치구이 (서서 먹는) 라멘집이 인기.





이 사진이 주말 오전, 그것도 비오는 날 찍은 거라 그렇기도 하지만.. 평소에도 한적한 동네다.





옆에 보이는 화려한 가게는 빠칭코.. 이 조용한 동네에서 나름 성업 중.





이거 이름이 뭐였더라.. 딱 보기에도 계란빵과 비슷한데 계란이 든 건 아니고.. 지하철에 파는 델리만쥬랑 비슷하려나?
퉁명스러운 할아버지가 만드시는데.. 할아버지 성격과 달리 빵은 무지 부드럽다.





말이 100엔샵이지 100엔이 아닌 물건도 수두룩.
원래부터 100엔샵이었다기 보다는.. 동네 구멍가게가 시류에 맞춰 적당히 간판을 단 느낌이다.
오래 전 우리네가 그랬듯이 가게 안쪽에 장지문 같은 게 있고.. 그 안에 일흔은 거뜬히 넘기실 듯한 할아버지가 계신다.
당연히 레지같은 건 없고.. 진짜 50년 이상은 되어 보이는 나무로 된 돈통에서 거스름돈을 꺼내 주심.
길 건너편에 지금까지 본 것과 다름없는 100엔샵도 있는데 (레지가 있고 알바생이 있는..) 괜히 정감가는 이곳을 이용했다.





일본의 골목.. 그러니까 일본의 집주변은 식물이 풍부하다는 느낌이었다.
뭐 자기 마당이 있으니 더 그렇기도 하겠지만.. 다세대 주택 주변도 이렇게 관리되어 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청량..





양 옆과 앞 뒤로 주택들이 늘어선 골목.. 그 사이에 자리잡은 가게.
문이 닫혀있어서 무슨 가게인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사는 동네에 이런 가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지 않을까?





색감이 너무 화려하고 예뻐서 일단 찍어보았다.
슬레이트와 철제구조, 계단의 새파란색.. 벽돌을 이미지한 타일의 푸른빛이 어찌나 멋지던지.
무슨 특이한 건물이나 카페도 아니고 일반 다세대 주택에 저런 파란색을 쓴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희한하게 주변과 어울리는 느낌이 더 놀라웠다.





일본의 골목이 깨끗하다 깨끗하다 하는데.. 내 보기엔 쓰레기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구역을 넘어서느냐 넘어서지 않느냐의 문제.
일본인 특유의 깔끔함이나 자기구역의 개념이 철저한 것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도 그럴 수 밖에 없다.
자전거를 세우는 것조차 돈을 내야하는 곳이므로.. 최대한 자기에게 할당된 구역을 효율적으로 쓰는 게 관건.





때문에 이렇게 자기 땅에 공간을 만들어서 주차를 해야 하고.. 그러므로 골목이 깨끗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인간적인 냄새가 안 느껴질 정도로 너무 엄격하게 하는 것도 그렇지만.. 솔직히 어느 정도는 찬성.
우리나라는.. 특히 가게의 경우 공간만 있으면 한도 끝도 없이 좌판이 앞으로 나오므로..





이런 집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평범한 사진이네 싶겠지만.. 놀라지 마시라. 병원이다. 앞에 붙은 건 명패가 아니라 진료시간 안내..
이곳 말고도 이렇게 골목 사이사이에 병원이 몇 군데 있어서 무지 놀랐다. 진짜 동네 의원이라는 건 이런 거군.
한국에서.. 작던 크던 병원 위치가 대로변이 아닌 건 본 적도 없는데.





내가 좋아하는 상점가. 일본은 동네마다 이런 쇼텐가이가 발달해 있는데..
튀김집, 도시락집, 생필품집, 꽃집, 수선집.. 자그마한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저녁 무렵에 채소파는 할아버지가 떨이라며 소리치는 것도 정겹고.. 저녁 찬거리를 사서 자전거에 싣고 가는 모습은 기본.
차차도 이 거리에 있었고.. 여러모로 이 거리를 무지 좋아했다.





퇴근시간이 되면 먹거리를 사들고 돌아가는 샐러리맨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언젠가 진짜 신기했던 건.. 상점가에 설치된 스피커(사진에도 보인다)에서 노래가 나왔던 거다.
기억은 안나는데 약간 오래되고 편안한 느낌의 팝송이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길에 듣기에 참 좋았다.

posted by 만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