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18. 09:35 ▶ scrawl

1.
티스토리는 공히 버려진 것 같다. 몇 번 보내본 문의메일에 대한 답변이 하도 기가 차서 검색해보니 이미 악평이 자자하다. 그 어떤 질문에도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는다고. 워드프레스는 귀찮고, 이미 자료 저장용으로 쓰고 있는 이글루스를 활성화 시켜야 하나. 네이버는 전에 잠깐 넘어가본 적 있는데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방문객이 너무 늘어나길래(...) 겁나서 관뒀다. 아, 지겨워. 생각해보면 이 방황은 당연하다. 애초에 태터툴즈라서 시작했던 거니까. 다음으로, 카카오로 넘어간 티스토리를 원했던 게 아니지.


2.
대학 때 선배들에게 사가(社歌)라며 배운 노래가 있었다. 배웠다고 해서 무슨 악보 보고 가사 외우고 그런 건 아니고,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대개 술자리)에서 웅얼거리며 따라하다 외우게 되는 일종의 구전이었다. 침묵 강토, 혈진 함성, 적산의 언덕... 가사만 봐도 출생이 짐작되는 이 노래의 원류가 뭘까 갑자기 궁금해져서 검색해봤는데. 그냥 작자미상의 운동권 노래 중 하나였나 보다.


3.
며칠 전 일본 지인에게서 안부 연락이 왔다. 하는 거라곤 가족과 3밀(密) 밖에 없다며 ‘3密이 한국에서도 쓰이는 건가?’ 하길래, 집에서 셋(지인, 와이프, 아이)이서만 붙어 지낸다는 얘긴가 보다 대강 넘겨짚었다. 그래서 한국은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게 있는데, ‘뭐 사회적으로 거리를 두면 집에서 가족들과만 있게 되니까 비슷한 의미 아니겠냐’ 했다. 문득 떠올라 찾아본 3密은 일본정부가 말하는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피해야 할 세 가지의 밀(3つの密). 헛소리했네. 역시 사회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언어를 따라잡기란 어려운 것이다.


4.
에어컨 실외기 뒤에 세입자가 생겼다.

품고 있는 동안은 물론이고 새끼가 웬만큼 커서 날아갈 때까지는 저대로 둬야겠지. 본래 친생물적(?)이지 않고 조류는 특히나 달갑지 않은 나로서는 그저 사태가 빨리 종결되길 바랄 뿐. 어차피 손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사진 찍는 내내 미동도 없이 저렇게 한쪽으로 고개를 살짝 비틀고 노려보고 있었는데, 순산을 방해했다간 당장 쪼아버릴 듯한 분위기였다.

라고 기록하고 사흘이 지난 오늘.

비둘기가 안 보인지 이틀 정도 되었다. 새끼가 태어날 일은 없을 것 같다.


5.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끌려서 <패왕별희>를 꺼내봤다. 가시지 않는 여운을 붙잡고 검색을 했다가 현재 상영작이라고 떠서 깜짝. 젠장, 알았으면 절대 안 봤을 텐데.. 오랜만의 감동이 있어야지, 지금처럼 모든 장면이 생생하게 박혀있는 상태에선 틀렸잖아. 이미 한참 전부터 171분짜리로 보고 있는데 확장판 의미도 없고. 이 작품에 대해 쏟아내려면 며칠이 걸려도 모자라니 관두고 이것 하나만. 비디오테이프 시절부터 지금까지 정말 매번 느끼는 게 있다. 데이도 쥬산도 샬로한테 너무 아까워. 이 모자란 놈이 뭐가 좋다고. 아름답고, 섬세하고, 열정적이고, 우아한 두 사람이 처연하게 스러질 때마다 한숨이 난다. 연기나 잘 하지 말지.


5-1.
충격. 꺼거의 앨범이 없다. 분위기 탄 김에 오랜만에 카세트테이프 상자를 꺼냈는데 총애가 안 보인다. 여명도 등려군도 그대로 있는데 왜!! 물론 중국에 갔을 때 사온 CD가 있긴 한데.. 닳고 닳도록 들었던 90년대의 추억은 어쩌라고.

어쨌든 그리하여 CD듣기로 전환. 북경에서 사온 총애 앨범이다. 케이스 옆면이나 내부 컬러 같은 게 달라 중국에 널린 짝퉁인가 싶지만 음질도 좋고 부클릿도 멀쩡하다. 거의 20여년 만에 자세히 살펴보니 라이선스CD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고 뒤에 ‘중국대륙지역 한정’이라고 되어 있다(ISRC는 있는데 바코드는 없음). 찾아보니 上海音像公司에서 들여온 초기판 앨범이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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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만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