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16. 20:57 ▶ scrawl

외부 일정에 맞추느라 평소보다 좀 늦게 나가는 날이었다. 여유롭게 준비를 하며 간만에 아침방송이나 볼까 싶어 티비를 켰는데 온 채널은 단 하나의 뉴스로 도배되어 있었다. 세상에, 대형 사고네, 어머 어떡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봤지만 엄청난 충격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큰 뉴스긴 한데, 인명이 희생되는 참사를 봤을 때 같은 기분은 전혀 없었다.

 

내가 배를 보고 있었으니까.

 

타이타닉이 침몰하던 100년 전도 아니고, 이역만리 망망대해 한 가운데서 레이저로 찾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영해 안에서도 육지에 가까운 편이고, 코딱지만한 통통배가 아니라 장비도 인력도 있을 대형 여객선이고, 무엇보다 침몰하지 않은 배의 모습을 카메라가 찍고 있고 그걸 전 국민이 보고 있으니까. 정부관계자도 언론도 아닌 일반 시민이 그냥 집에서 티비 켜고 뻔히 보고 있는 상황이니까. 배는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고, 그 안에 있을 수백 명은 살아 있고, 그 순간을 보고 있으니까.

 

보통 긴급속보가 생기면 뉴스는 새로운 소식이 있을 때까지 일정한 텀을 두고 같은 리포트를 반복한다. 현장에서 송출된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니까 나는 계속 같은 장면을 보고 있지만, 경찰이든 군이든 민간이든 전문성 있는 주체들이 당연히 뭔가 하고 있겠지 생각했다. 구해내겠지, 가 아니라, 구하지 못하는 것 자체를 아예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큰 걱정 없이 티비를 끄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하루종일, 뉴스를 볼 때마다 믿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배 아직 안 가라앉았잖아. 주변에 배들도 헬기들도 보이잖아. 밤이 되고, 다음 날이 되고, 발을 동동 굴렀지만 여전했다. 슬프고 안타까운 감정에 앞서 그냥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는지, 이상했다.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다. 이해된 것들의 자리는 분노가 대신 채웠다. 연대를 위해 달았던 노란 리본은 이제 기억을 위한 장치다. 6년 동안 달고 있으니 가끔은 일상의 풍경에 너무 동화되어 눈에 잘 안 띄기도 하지만, 그래도 매일 드는 새카만 가방에 콱 박혀있는 노란색은 기억하고 공감하고 위안을 주고받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지만 가장 지속적인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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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만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