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워낙 전공을 싫어했던 내가 가장 즐겨 들었던 수업은 국제관계학과 전공 강의들이었다. 타과생치고는 나름 재밌게, 매우 열심히 했는데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은 수업이 있었으니 국제 정보를 데이터화하고 분석하는 것에 목적을 둔 영어강의였다. '국제 정보'보다는 '분석'에 초점을 둔 수업이라 책이 아닌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뤄야한다는 걸 몰랐다. 타과생 중에서도 경제학이나 회계학 경험자들은 좀 괜찮았지만 기초지식이 전무했던 나는 아주.. 개죽을 쒔다. 그런 수업이었으니 어느날 교수님께서 던지신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국가들의 이름을 아는대로 말해보라"는 질문이 왜 나왔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남아공에서 이집트까지 메이져(?) 국명들이 왠만큼 나왔고, 너도 나도 말하던 소리가 잦아든 찰나 별 생각없이 시에라리온을 내뱉었다. 중얼거림을 용케 듣고 반색한 교수님으로부터 돌아온 '어떻게 그런 나라도 알고 있느냐'는 식의 반응이 유독 인상깊어 기억할 뿐이다. 시에라리온은 그런 나라였다. 특별한 이유없이는 언급할 일조차 없는 머나먼 나라, 마음 먹고 얘기할라치면 꼭 부연설명을 붙여야 하는 나라. 이 책을 쓴 이스마엘 베아는 그 시에라리온 사람이다. 저자가 시에라리온 사람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평범한 한국인이 시에라리온 사람의 책을 읽을 기회가 얼마나 있겠나. 사실 시에라리온에 국한할 필요도 없다. 지금까지 살면서 읽은 책 중에 아프리카 흑인, 아니 어디가 됐든 흑인이 쓴 책이 있던가? 머릿속을 헤집고 헤집다보면 뭐가 나올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기억나는 건 제로. 그렇다면 내 인생 최초의 아프리카 사람이 쓴 아프리카 이야기가 되는 거다. 그것도 아주 아주 슬프고 지독한 아프리카 이야기.
+ 시에라리온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사람들을 위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와 이 책을 연달아 보면 매우 쉽고 빠르게 내용파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막판에 몰아치는 헐리우드식 영웅모드가 비판을 받았고 책은 문장력이나 구성에서 미흡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둘 다 그 어떤 부족함도 커버할 수 있는 '사실'이 기반이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의 시작은 '아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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