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물정 모르던 스무살, 처음 중국에 갔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편안한 일정. 나는 베이징 왕푸징 거리에서 여유롭게 쇼핑을 하고 있었다. 화려한 거리와 그만큼 화려한 사람들 사이에서 문화혁명 때나 입었을 것 같은 허름한 노동자 복장으로 구걸을 하는 몇몇 중국인들이 보였다. 그들을 보며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인민복을 아직 입는다는 것에 흥미를 가졌을 정도로 무심하고 어렸던 나였다. 별 신경을 두지 않고 거리를 둘러보던 나를 누군가 뒤에서 살짝 잡아당겼다.
7~8살쯤 되었을까. 원래 색깔인지 더럽혀져서 변한 건지 모를 칙칙한 누더기 수준의 옷을 걸친 아이는 30대로 보이는 여성의 흑백 영정사진을 들고 있었다. 순간 얼어버린 내 앞에 서서 빤히 나를 바라보던 아이. 별 반응이 없는 것 같자 곧 걸음을 옮겨 다른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가슴팍에 영정사진을 곧추세운 채로.
안타깝게 여겨 지갑이라도 꺼냈다가는 수십명이 달려든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런 이유로 돈을 주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냥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진 속 여성이 정말 아이의 엄마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저 아이가 그런 사진을 들고 하루 종일 거리를 배회해야 한다는 그 자체가 가슴 깊은 곳에 와서 박혀 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한국에 도착해 집에 가지도 않고 캐리어를 끌고 만난 돌고래에게 이야기를 하며 그제야 눈물을 쏟았을 정도로, 그 아이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생각하며 내가 세상에 나가 할 일이 참 많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이때의 일이 생각났다. 사실 이 책은 20대 초반의 여행담을 쓴 것이라 혁명에 대한 사상적 이야기는 별로 없는 편이고, 좌충우돌 생고생하며 겪은 청년들의 모험담이 주를 이룬다. 좀 더 덧붙이자면 체의 남미에 대한 애정, 그리고 방대한 지식 정도랄까.
그러나 미세하게 드러나기는 해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여행을 통해 그가 마주하게 된 남미의 현실이다. 여행을 했을 때의 그는 아직 혁명가로서 각성(?)하기 전이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경험한 현실이 그를 무겁게 짓누르고, 또 미래를 향해 끌어올렸음은 여지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체가 여행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눈이 현실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시기, 같은 곳을 여행하고도 모두가 같은 눈을 가지는 건 아니지 않던가.
저 아이를 보고 생각했었다. 좀 더 깊은 곳, 좀 더 아픈 곳을 바라보자고. 뭐 나는 체와 같은 케파가 없는 인간인지라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여행이 아닌 일상에서 이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은 했었다. 그래, 마음은 항상 있었다. 마음만은 말이지.
그나저나 이 책, 산 지 몇 년 만에 읽은 건지 모르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독서시대를 끝낸 나는 대학시절 정말 쓸데없이 장서藏書 욕심이 생겼었다. 많이 사고 싶은데 책값이 만만치 않으니 주로 이용하는 것이 헌책방, 학교 도서관의 폐도서 정리, 그리고 가끔 캠퍼스를 찾아오는 도서할인행사. 이 책은 도서할인행사에서 샀는데 그래서 그런지 오타도 좀 있고 최근 나온 책보다 자료사진도 적게 들어있다. 어쨌거나 책꽂이 장식용으로 전락한 지 몇 년 만에 드디어 읽었으니 그것 만으로도 성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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