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5. 11:58 ▶ nomad/'11 Turkey

많이 다니지도 않는 여행, 다녀올 때마다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이유를 대려면야 많지만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 시작을 해야 될 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맴도는 문장들을 적절히 풀어낼 방법을 고민하다 보면 시간이 흐르고, 시간이 흐르면 기억은 옅어지고 의욕은 사그라지고, 종국엔 뭔가를 써야 하는 의무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당연히 그럼 더 안 쓴다. 이런 핑계로 멈춘 여행기가 여럿이요, 시작도 못한 여행기가 수두룩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날이 있다. 무언가가 건드려진 것처럼 갑자기 일상이 멀어지고 그때 그 장소로 돌아가버린다. 티벳 여행기는 그렇게 썼다. 어느 날 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갑자기 ‘땡겨서’ 아무 계획없이 시작했다. 사실 그렇게 시작하지 않으면 기록을 남기는 것도 고역이요 읽기에도 지루하다. 사설이 길었는데 여하튼 그리하여, 나는 지금 반년하고도 한 달이 지난 터키의 기록을 시작한다.



2011년 4월은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탄 지 딱 2년 째 되는 달이었다(써놓고 보니 더 기가 막힌다). 그 2년이 얼마나 질풍노도의 시기였는지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 아무래도 떠나야 할 것 같아서 일주일의 휴가를 냈다. 앞뒤 주말까지 내가 쓸 수 있는 최대의 시간은 9일. 원래는 중앙아시아에 가려고 했다. 최대한 이질적인 풍경 속에 던져지고 싶었는데 내게 아프리카나 남미보다 낯선 곳이 중앙아시아였다. 그 와중에도 조금쯤 친숙한 우즈벡이나 카자흐가 아닌 키르기스스탄 혹은 타지키스탄에 가고 싶었다. 못 간 이유는 당연히 비행스케쥴 때문으로, 하기야 키르기스스탄에 황금노선이 배치될 리가 없었다.

그래서 터키에 갔다. 언제가 됐든 가볼 나라였고 이제 슬슬 중동에 데뷔할 때가 되었다고(실은 지났다고) 생각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토요일 아침에 출발해 다음 주 일요일에 도착하는 최고의 스케쥴이 있었다. 원래의 나라면 이런 단기여행에 터키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겠지만(항공료를 생각하면 최소 한 달은 있어야 하는 나라가 아닌가) 그만큼 나는 떠나고 싶었다. 아니 사실 이렇게 과감하게 지르지 못해 허구헌날 중국과 일본을 갔던 것이겠지. 조금이라도 멈칫하면 이런 저런 상황을 핑계로 주저앉게 될까봐 냉큼 비행기표를 예약해버렸다. 쉽게 말해 사고를 친 거다.

일단 사고를 치니 흥분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배낭을 메고’ ‘혼자’ 떠나는 게 처음이었다. 지나치게 놀라웠지만 사실이었다. 배낭을 멨을 땐 돌고래와 함께였고, 혼자 떠났을 땐 배낭이 아니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어떻게 보면 내가 꿈꾸던 여행의 진정한 첫 걸음이 될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홀로서기’를 하고 싶었다. 아니 혼자가 되고 싶었다. 청승맞게 외로움을 느끼고 싶었던 건 아니고 혼자가 되면 오히려 또 다른 만남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그 예측은 맞았다. 여행 내내 나는 혼자면서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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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만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