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24. 00:28 ▶ nomad/'11 Turkey

아침 일찍 C양은 한국 아저씨들의 차를 얻어 타고 파묵칼레를 향해 떠났고 나는 셀축행 야간버스를 예약했다. 이동경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C양이 꽤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함께 가지 않겠냐는 제안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빨리 혼자가 되고 싶었다. 항상 그렇듯 함께는 즐겁기도 하지만 그만큼 제한적인 부분이 있고, 무엇보다 일부러 혼자 온 여행이 아닌가. 모든 걸 서로의 동의 하에 결정하는 여행보다는 내 발길 닿는 대로 가는 여행이 하고 싶었다.


버스가 저녁 8시에 출발이었기에 이스탄불에 3일만 있다가 돌아가야 하는 L양과 하루 동안 관광을 하기로 했다. 짧은 기간 내에 많은 걸 보고 싶어하는 의욕만만의 L양이 철저히 준비를 해온 탓에 그저 따라다니면 되는 일정이었다. 아무래도 도시는 정보가 필요하니까. 이른 시간에 호텔을 나와 돌마바흐체, 아야소피아, 블루모스크, 지하궁전 등을 정신없이 보고 갈라타 다리 아래에서 그렇게 염원하던 고등어케밥도 먹고 분위기 좋은 펍에서 맥주도 한잔하고 헐레벌떡 돌아와 버스를 탔다.



...이렇게 줄여도 되는 걸까?



이스탄불의 관광지, 아니 유적지들이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하다는 거야 알지만 이런 식의 여행은 한참 전에 관뒀다. 사실 여행에서 관광지가 주는 매력은 거의 없다. 그 유명한 장소를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소망과 확인 후의 쾌감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오히려 괜찮은 관련 다큐를 한 편 보는 게 낫다는 생각. 역사적, 예술적 취향에 맞춘 여행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은 첫째가 ‘나’, 둘째가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란 미어터지는 관광지의 관광객은 물론 아니었다.


나나 돌고래(내 여행기에 수 차례 등장하는 트래블메이트), 혹 우리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은 ‘관광객’이라는 단어에 알레르기가 있다. 관광이 아닌 여행을 원하고 관광객이 아닌 여행자의 타이틀을 달고 싶어한다. 그 차이는 뭘까? 사전적 의미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굳이 설명하자면 전세버스에 실려 정해진 코스를 다니고 정해진 걸 먹으며 가이드 없이 활보하는 곳은 쇼핑센터 뿐인 여행객, 쯤 되겠다. 사실 매우 간편한 이 시스템을 경멸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질색하는 건 여행이 끝난 뒤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타의로 이런 여행을 몇 번 경험했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오감이 생생하게 반응하는 ‘여행’과 달리 기억에 남는 게 거의 없다. 내가 갔던 곳의 지명도 모르고 그 나라 사람들을 본 기억도 없다. 기억나는 건 전세버스에서 우르르 내렸다 타기를 반복했던 것과 정해진 시간에 맞추기 위해 잠에서 깨야 했던 것.

 

길게 썼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내가 보고 싶은 곳’을 보느냐와 ‘남이 보라고 한 곳’을 보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그리하여, 잠시 동안의 이스탄불 체류는 ‘드디어 터키에 도착했다’는 중요한 팩트만을 남긴 채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관광 사진 커밍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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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만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