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5. 01:14 ▶ scrawl

한 보름 전인가... 일본에서 알고 지낸 S씨가 서울에 왔었다.
도쿄에 있을 때 꽤 친하게 지내기도 했고, 첫 한국여행이라는 말에 여러모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S씨의 전속가이드로 일주일을 보냈는데- 이게 완전 하드 스케쥴이었다는 얘기.


이 사람이 정말 나만 철썩같이 믿고 왔는지 한국여행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해오지 않은 것이다.
공항 마중부터 시작해서 (그것도 김포가 아니라 인천) 호텔 나와서부터 들어가기까지 매일 풀타임으로 안내하고,
지쳐 돌아와서는 그 다음날 일정을 위해 새벽 서너시까지 인터넷으로 정보찾고, 다시 아침부터 가이드.
예의상 빼고 이런 것도 없이 전부 부탁하길래 사이사이 모든 자질구레한 볼일도 대신해주었다.
이러다보니 여행 온 S씨보다 내가 먼저 지쳐 떨어져나가는 건 당연지사.
거기다.. 나는 맨 얼굴에 구질구질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도시여성 아닌가.
종일 힐을 신고 돌아다니다 마비된 발을 이끌고 남산을 올랐을 땐 딱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_-
암튼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S씨는 한국여행에 매우 만족감을 표시하며 돌아갔는데
이상하게... 잘 도착했다는 메일 하나가 없었다. 며칠 기다려도 연락이 없길래 좀 어이없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렇게 예의없는 사람이 아닌데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길 한 열흘이 되었을까. 우편함에서 발견했다.
멋진 붓글씨로 휘갈겨 쓴 내 이름이 봉투 겉면의 반을 차지하는 편지를.
우편물이라곤 카드 명세서나 보험사 간행물, 혹은 백화점 세일 소식 뿐인 2009년의 나에게
편지란 참으로 생소하면서도 뭔가 그립고 즐거운... 그런 묘한 것이었다.

편지지 두 장을 꽉꽉 채워 쓴 정성이 감동스럽긴 했지만 사실 처음엔 읽을 맛이 나지 않았다. -_-
S씨가 꽤 달필인 건 알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외국인에게 이렇게 휘갈겨 써보내면 어쩌자는...
전부는 아니었지만 문맥상 파악하지 않으면 진짜 낫놓고 기역자도 모를 글씨들이 군데군데 수두룩했다.
아무튼 편지는 한국에서 내 덕분에 정말 즐거웠다는... 정말 감사하고 있다는 얘기로 시작했다.
한국요리도 전부 맛있었고, 한국이 좋아졌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한 건 양국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딱딱한 내용이 아니라,
이렇게 가까운 나라인데 너무 이해가 부족했던 게 아닌가 한다는... 그런 얘기.

사실 S씨는 한국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싫을 것도 좋을 것도 없는 그냥 먼 나라.
그러다 일하는 곳에서 알게 된 나와 친해졌고, 휴가가 생긴 김에 첫 한국여행이나 해볼까- 해서 온 것이다.
한국에 도착한 날 S씨는 '한국의 식민 역사에 대해 모든 게 전시된 엄청 넓은 곳'에 대해 들었다며
그곳에 가보고 싶다고 했었다. 일단 일본인인 이상 가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을 들어보니 독립기념관인 것 같았는데, 일정상 좀 무리가 있어 꿩대신 닭으로 서대문형무소에 갔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덕수궁에서, 창덕궁에서, 나는 안되는 일본어로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무지 애썼다.
S씨의 무지는 과연 상상을 초월해서 일제시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특히 덕수궁은 식민시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장소이고 대학다닐 때 따로 공부했던 적도 있어서
기억나는 모든 지식을 총 동원해 설명했다. (예전에 공부해두길 정말 잘했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나름 최대한 순화시켜 말하기도 했고, S씨 역시 거부감없이 모든 이야기를 유심히 들었다.

편지의 일부를 옮겨본다.
「이렇게 가까운데 멀게만 느꼈던 건 역시 양국의 역사 때문이겠지요.
  내 연령대는 나이든 분들에게 들은 한국 이야기가 부정적인 것들 뿐이었고,
  그래서 어린 마음에도 그런 나라인가보다, 그런 사람들인가보다 하고 생각했었어요.
  반면에 같은 인간인데 어째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걸까... 싶기도 했고.
  두 나라의 역사를 알고 난 후에 옳고 그름에 그치지 않는 더 깊은 이해를 해야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면세점에서 쇼핑만 잔뜩 하는 일본인들을 보고 복잡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겠죠.」
본인도 일본인이면서 일본인이 가득한 관광지, 특히 쇼핑하는 곳을 엄청나게 싫어했던 S씨의 행동이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일본인 관광의 정식루트인 명동이나 남대문 시장은 가지도 않았더랬다)

나는 한국인이고, 일제시대에 관한 자료나 청산되지 않은 문제점들을 보면 화가 나고 때론 눈물도 난다.
하지만 나는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고... 그 시대를 경험한 분들과 같은 분노는 솔직히 갖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래서 같은 의미로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닌 일본인들에게 무조건 미안한 마음을 강요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사실관계에 대해 아는 것은 감정적인 문제와 별개라고 생각한다.
2009년을 사는 일본인인 S씨가 한국인인 나에게 일제시대에 저지른 일에 대해 사죄할 필요는 없지만,
그 시대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 명확히 아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것은 일본에게도 한국에게도,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양국의 모두에게 중요한 일인 것이다.
S씨와 대화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차이점은 그 시대에 대한 명칭이었다.
우리에겐 식민시대, 혹은 일제시대로 통하는 그 시대가 평범한 일본인에게는 그저 '전쟁'이었다.
일본은 전쟁 중이었고, (덕분에 우린 참여하지도 않는 전쟁을 위해 죽어났지만)
패전을 했을 지언정 개전국도 아니었고, 그러므로 식민조선 역시 전쟁 중에 일어난 안타까운 일들 중 하나인 것이다.
100% 피해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해자도 아닌 그저 전쟁 경험국. 그런 역사. 그게 일본인의 시각이었다.
S씨 역시 '전쟁 중에 일어난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을 가진 일본인들이 많다고 했다.
그래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S씨가 바뀌었듯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바뀔 것이다.
한국의 역사를 아는 것이 서로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아는 일본인들이 늘어날 것이다.
이에 맞춰 정말 중요한 건 오히려 한국인들의 변화가 아닐까. 우리 역사에 대해 우리부터 공부하고,
우리부터 바른 인식을 하고 있어야 되는 게 아닐까.
다른 일본 지인들과 달랐던 S씨의 방문으로 나 역시 깨달은 바가 많았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은
내가 살아온 곳, 우리나라에 대해 너무나 아는 것이 없다는 자책감이었다.
뭘 알아야 자부심이고 뭐고 생기지. 아니 나는 사실 내셔널리즘 같은 거 안 좋아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하는 순도 100% 한국인인 이상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지식은 갖추어야겠다 싶었다.

그냥 가볍게 쓰는 글이었는데 생각보다 무거워졌네. 어쨌든 결론은 쉽고 단순한 것 아닐까.
서로 이해하며 사이좋게 지내자- 뭐 그런 거지.
어째 나이가 들어도 유치원 때의 기본 교훈에서 벗어나질 않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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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만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