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25. 04:31 ▶ scrawl

매주 이틀밤을 새던 시기가 있었다. 


대학 학보사 기자였던 때다. 기사마감날인 금요일. 밤 9시쯤 최종편집회의를 하고 나오면 1차적으로 진이 빠진다. 하지만 본격적인 건 그때부터 시작이다. 내 기사쓰랴, 후배 녀석들 빽 주랴, 금요일 밤은 통째로 반납하기 일쑤였다. 물론 갑작스럽게 펑크가 나거나 특별한 기획이 있는 경우는 그야말로 지옥의 금요일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정신없는 금요일에 기자들은 몇 가지 부류로 나뉜다. 일단 모든 기사가 기본적으로 마무리되어 집에 가서 숙면을 취하고 오는 부류. 난 이 부류에 낀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두번째는 기사가 되지도 않았는데 집에 가버리는 부류다. 자고 일어나 내일부터 깔끔하게 시작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간혹 '집에 가서 쓰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하나 대개 실패하고 만다). 세번째는 밤을 새서 기사를 마무리하고 아침에 자러 가는 부류. 쓰기는 썼으니 두번째 부류보다는 조금 안심이 된 상태에서 자러 간다. 네번째는 세번째를 노렸으나 의도치 않게 깊은 잠에 빠져든 부류로, 가장 초췌하고 가장 불안하다. 그리고 다섯번째. 밤새 기사를 쓰고 한숨도 자지 않은 채 토요일 오전부터 풀가동하는 부류다. 나는 다섯번째였다.

'금요일 밤이 되기 전에는 기사가 써지질 않는다'는 뻔뻔한 지조를 가지고 있던 나는 저 지조덕에 매번 날밤을 샜다. 사실 저 주장은 뻔뻔하기는 해도 솔직한 것으로, 정말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도대체 금요일 밤이 되지 않으면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던 것이다. 닥치면 하는 이 버릇은 물론 지금까지 잘 간직하고 있다.

야식타임도 끝나고 각자 돌아가 컴퓨터를 붙잡고 씨름한지 한 시간여. 새벽 2시 정도가 되면 시끌시끌하던 편집국도 고요해지고 하나둘 잠에 못이겨 나가 떨어지고 만다. 이때부터가 가장 집중이 잘 되는 시간이다. 늦게 쓰기 시작한데다 부서 특성상 기사량이 많지만 그 와중에 또 대강 쓰기는 싫어서, 고민하고 고민하며 한줄 한줄을 채워간다.

이 시간. 여름은 모기들이 좀 문제긴 해도, 새벽 기운이 서늘하기도 하고 밤도 짧아 정신차리는 데 도움이 된다. 문제는 겨울이다. 학교 스팀은 새벽 4시쯤이 되면 끊기고 편집국엔 변변한 난방기도 없다. 회의실 라꾸라꾸에 놓여 있는 언제 빨았는지 모를 이불들이 활약을 해야되지만, 이미 라꾸라꾸에는 수마睡魔를 못이긴 전사들이 차곡차곡 구겨져 있다. 결국 옆 건물의 총여학생회실에 있는 이불을 가져와 온 몸을 둘둘 감는다(이때 경험 때문에 후에 편집비를 모아 온풍기와 스토브, 담요 여러 장을 사버렸다).

날이 밝기 시작한다. 기사를 대강 마무리하고 조판할 준비를 해야한다. 일간지야 편집기자가 따로 있지만 학생기자들은 그게 아니니까 기사를 쓴다고 끝난 게 아니다. 기사들을 고려해 레이아웃을 짜고, 그에 맞는 이미지나 사진을 골라 배치하고, 다시 한번 기사를 손본다. 공식적인 스케쥴은 금요일에 기사마감을 한 후 토요일 오전부터 조판을 하는 것이다. 1학년 때는 두번째나 세번째 부류에 속했지만, 저 부류는 기본적으로 조판을 오후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기사는 늦게 쓴 주제에 조판은 늦기 싫었던 나는 나와 일치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K양과 1, 2등을 다투며 오전 안에 조판을 시작하곤 했다. 이 순간이 세번째와 다섯번째 부류가 나뉘는 지점이다.

그렇게 하다가 오후 서너시쯤이 되면 한계가 온다. 이때 자는 잠이 중요하다. 정말 한계의 한계가 오면 자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까무룩 잠이 든다(K양과 나는 이게 잠이 아니라 기절이라고 생각했다). 그 잠은 누가 깨우지 않아도 30분 정도면 끝나고, 그 30분은 다시 일요일 새벽까지 달릴 수 있는 힘이 된다.

조판은 보통 일요일 새벽까지 이어진다. 제대로 자지도 씻지도 못한 지 이틀째. 이쯤되면 그냥 정신력으로 버티는 거다. 그냥 버티는 게 아니라 이틀 내내 머리를 쥐어 짜내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 것이니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멍해진다. 1학년 때는 살짝 나가서 수다도 떨고 편의점에도 갔건만, 맡은 면이 생긴 이후에는 푸짐한 야식이 도착해도 바로 눈이 안간다. 그리고 드디어 조판 완료. 항상 가는 감자탕집에 가서 뒷풀이를 한다. 때에 따라 술을 더 마실 때도 있고, 새벽까지 여는 오래된 헌책방에 가기도 한다. 아침 첫 차를 기다리기 위해 다시 편집국 라꾸라꾸의 품으로 돌아왔다가 가히 상쾌하지 않은 일요일 오전을 맞이하기도 한다.

별 의욕도 기억도 없이 일요일이 지나면 다시 월요일. 아침 일찍 나와 학생들이 오기 전에 캠퍼스 곳곳에 신문을 배부해야 한다. 본관에도 가고 교수님들 메일박스도 챙긴다. 간지작업이라도 있는 날이면 사람들이 보든 말든 바닥에 주저앉아 신문을 껴야 한다(종종 지나가던 같은 과 친구가 잡혀서 같이 하는 경우가 있다). 종일 이번 신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다음 신문 준비를 하고, 저녁에 모여 평가회의를 한다. 평가회의 뒤에는 뒷풀이. 다같이 한잔 하고 돌아가는 길은 이번 주 아이템 고민에 편치만은 않고, 또 그렇게 한 주가 시작된다.




그 시절 이야기를 이렇게 자세하게 써본 적은 없다. 사실 대학신문사 얘기라는 게 여자들이 듣는 남자들 군대얘기 같은 것이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닥 재미가 없다(물론 예외는 있지만. 난 군대라는 조직은 싫어해도 군대얘기는 좋아한다).

쓰다보니 그때 추억들이 끊임없이 고개를 든다. 조용한 새벽 편집국에 누군가가 틀어놓던 배경음악들, 학교 자판기 음료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마감날의 친구 매일우유, 새벽 4시경 컴컴한 행정계장님 방을 울리던 전화벨 소리에 두려움에 떨다 결국 귀신 이야기로 수다를 떨어버린 어느 밤, 푸르스름하게 밝아오는 하늘을 보던 빨간벽돌 계단, 기사쓰느라 조급한 와중에도 음료 한잔 뽑아마시며 동기 혹은 선후배와 간간히 나눴던 고민들, 그리고...

어느샌가 잃어버린듯한 열정.

한창 파릇파릇하고 할 것도 볼 것도 만날 사람도 많은 20대 초반. 그 시기의 금요일, 토요일, 때론 일요일을 모두 반납했었다는 게 지금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두달 간의 방학 역시 합숙세미나에 실무교육에 다음 학기준비에, 방학 없이 1년 내내 학교를 다니는 기분이었다. 그 과정에서 잃은 것도 있었고, 잃지 않기 위해 신문사를 떠난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의 날은 있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의 날까지 할 수 있었던 건 두말할 것 없이 열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긋지긋하고 힘들어 죽겠다고 했지만, 나는 참 많이 즐거웠다. 편집장으로 지목 받은 뒤 하기 싫다며 요리조리 도망다녔을 때-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시는 우리 어머니,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를 낳고 지금까지 길러오면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건 신문사 일이 처음이었다고, 니가 좋아서 하는 것이니 마지막까지 잘 해보라고. 그 말씀에 동기들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시간 역시, 너무 힘들었지만 너무 좋았다.

결국 답은 단순한 것이다. 사람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열심히 살아야한다. 듣는 것만으로도 좀 갑갑하고 부담스러운 '열심히'라는 단어는 아마 결과에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그 시절 나는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의식은 없었다. 매일 매일 즐거웠던 것도 아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 열심히 살았다. 이틀밤을 샜던 건 내가 체력이 넘쳤거나 혹은 항상 새지 않으면 불가능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냥 그 이틀간의 시간은 더 나은 기사를 쓰고 더 나은 신문을 만드는 것에 쓰고 싶었다. 그만큼 좋아했고, 그만큼 열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가능하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나이나 기억은 그냥 이대로도 상관없다. 다만, 그때의 열정만큼은 다시 찾아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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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만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