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7. 22:27 ▶ nomad/'08 USA: New York



"그냥... 한국에 있으면서 이래저래 상황이 답답해서요. 마침 기회가 좋길래 간 거죠, 뭐."
"그래서 갔다 오니까 뭐가 좀 바꼈어?"
"...바꼈어요~!!"
"바뀌긴 뭘. 똑같지.(笑)"
"...아녜요. 그래도 갔다오고 얼마 동안은 바꼈었어요.(笑)"

지난 달에 한 선배를 만나 술 한 잔하며 나눴던 이야기 중 일부. '뉴욕엔 대체 왜 간 거냐'라는 질문에 저런 대화가 이어졌다. 책 한 권에 인생이 바뀌기도 하는 10대도 아니고, 한 달간 뉴욕에서 밍기적거렸다고 해서 나라는 인간이 크게 달라졌을 리 없다. 그걸 너무나 잘 아는 나도 선배도 낄낄거리며 술잔을 부딪혔다.

물론 그렇다고 그 시간들이 쓸데없었다고 치부할 수는 없지만. 아니, 인생 첫 뉴욕데뷔가 쓸데없을 리가 있나! 언제나 그렇듯 여행은 아무 것도 얻어오지 않으려고 해도 상상 이상의 것들을 안겨주는 법이다.



사실 애초에 잡은 여행기간은 열흘이었다. 그게 돌아갈 날이 되니까 자꾸 마음이 바뀌어서 이틀 늘리고, 사흘 늘리고, 아니 돌아가야하나 싶어서 다시 취소하고, 다시 늘리고, 하다보니 결국 3주가 된 것. 만약 그 기록이 남았다면 마지막에 전화받은 항공사 직원은 얜 대체 뭐하는 앤가 싶었을 거다.

물가 비싼 뉴욕에서 마음대로 여정을 늘릴 수 있었던 건 나의 베스트 프렌드이자 트래블메이트인 돌고래의 도움이 가장 컸다. 아니 이번 뉴욕행 자체가 돌고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지. 당시 돌고래는 뉴욕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마음 고생으로 많이 지쳐있었다. 시차에도 불구하고 허구헌날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너 미국에 오면 안돼?"라고 말하는 돌고래에게 참 미안했다. 실은 몇 년 전에 돌고래가 미국에 있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그때 나는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중국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물론 첫 뉴욕여행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지만, 10년지기가 원하는데 까짓거 어딘들 못가랴! 하는 마음도 이번 뉴욕행을 부채질했다.

결국 그래서 뉴욕에 체류하는 동안 돌고래에게 얹혀 살며 숙박비를 줄일 수 있었기에 부담없이 기간을 늘릴 수 있었던 것. 돌고래는 회사에도 나가야했고 한국 돌아가기 전에 이것 저것 정리도 해야해서 매일 같이 있을 순 없었지만 어차피 난 혼자 있는 걸 좋아하니까. 때로는 혼자 때로는 함께하는 일상이 참 편하고 좋았다.



원래 여행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 법이지만, 뉴욕에서의 시간은 유독 지금까지의 여행과는 느낌이 좀 달랐다. 이미 뉴욕에서 두 번째 장기체류를 하고 있는 돌고래와 함께 살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선진국의 대도시 여행이라는 게 그닥 스펙타클하지는 않다는 점도 작용했을 거다. 적지 않은 여행기간을 작은(지리적으로) 맨해튼에서만 보냈다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경험하는 건 온통 새로운 것들 뿐이었지만 서울에서와 비슷한 페이스로 살았기에 그냥 '매우 특별한 일상'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거였다. '뉴욕에 있었다'는 것. '난 지금 뉴욕에 있다'는 사실이 상기되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생활이었다. 어떤 면으로는 사람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그 이름만으로도 특별해지는 도시 뉴욕 아닌가.

그 뉴욕이, 벌써 3개월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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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만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