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6. 22:09 ▶ nomad/'07 Japan



사실 일본에 가기 직전까지 내 상태는 말그대로 메롱이랄까, 유체이탈 상태랄까, 넉다운이랄까, 여튼 회복불능의 펀치를 맞고 카운터를 세고 있는 상황이었다. 작년 말부터 겹치기 시작한 불운 및 악재로 뇌와 가슴 속에 무언가가 꾹꾹 눌러 담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터지면 피가 나올지 케첩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삶에 활력을 주고자 시작한 것이 바로 일본어였다. 그동안 올바른 경로로 일본어를 접하지 않은 내가 아는 일본어라곤 이런 것.

"자, 이쿠죠!" (가자, 라는 뜻으로 직접 무언가를 타고 싸울 때 자주 나옴)
"자, 이케!" (가라, 라는 뜻으로 무언가에게 싸움을 명령할 때 자주 나옴)

......
여하튼. 가타카나도 모르던 내가 일본어에 손을 댄지 정확히 4주가 되던 시점 밤 9시 경, 신께서 친구녀석의 핸드폰을 통해 내게 다가오셨다.

"너 일본 갈 생각 있냐?"

내용인즉슨 일본 왕복 비행기표를 비수기값에도 못미치는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것, 생전 처음 들어본 센다이로 들어가서 칸사이로 나오는 일주일 여정이라는 것, 그리고... 출발이 일주일 뒤라는 것!

신께선 상황이 긴박하니 그날 밤 중으로 고민해서 내일 오전에 통보할 것을 당부하셨고 나는 곧장 컴퓨터를 붙잡고 검색부터 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경유지로도 가본 적 없는데. 가서 잠은 어디서 자고 어디서 뭘 먹지? (역시 모든 것은 잠과 밥에서 시작...-_-) 일본어도 못하는데 도시 이동은 어쩌나. 교통이 무지 복잡하다던데. 일주일 뒤면 너무 급작스러운 거 아냐? 당장 돈 들어갈 구멍이 많은데 비행기 티켓이 싸다고 해도 돈이 안 드는 건 아니잖아.

그러나.



나사가 빠진 채 지내던 나날들.
아무런 의욕도 의지도 없는 좀비와도 같은 나.
그래, 이건 신의 계시다. 잠시라도 새로운 곳으로 떠나 머리를 식히고 오자.
마침 일본어를 배운(4주-_-) 상황에서 마침 이렇게 싼 티켓!
더 이상 이런 유령같은 생활은 안돼. 가는 거다, 일본!

해서 일본이라는 목적지보다는 떠나는 그 자체에 의의를 둔 여행을 가게 된 것이었다.
...로 깔끔하게 끝나면 좋으련만, 좀 급박해도 일주일 동안 잘 준비해서 가면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결정을 한 시점부터 계속 바쁜 일이 겹치는 바람에, 결국 떠나기 직전까지 이틀 밤을 새고 호텔 예약증 및 이런 저런 프린트물과 여권을 놔둔 채 출발했던 것이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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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만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