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을 하루 앞둔 여행 마지막 날 저녁 7시 반. 나는 이곳에 있었다.
페리의 갑판에 서서 맞는 밤바람은 시원했다. 출항을 기다리는 가슴 한켠이 왠지 모를 벅참으로 두근거렸다.
그랬다. 나는 다시 사쿠라지마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루 종일 내 머릿속은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핵심은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사쿠라지마야 다음에 가면 되고, 아니 평생 안 가도 누가 뭐랄 것 없고, 우편도 있고, 오늘은 마지막 밤인데, 꼭 그렇게 해야 되나?
그러면서 나는 예정대로 일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호텔 리셉션에 사진 인화를 할 곳이 없냐고 물으니 추오역 빅카메라에 프린트 기계가 있다고 한다. 사진을 고르고 USB에 담아 추오역으로 향했다. 친절한 빅카메라 직원 여러 명을 거쳐 결국 인화한 사진 여러 장을 손에 쥐었다. 그 사진들은 츄우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할아버지 독사진, 그리고 츄우의 음식 사진들이었다. 메뉴판에 붙은 사진이 너무 낡고 맛없게 보여서 신경 쓰였던 것이다.
리무진 표도 사놓고 저녁도 먹었다. 마지막 정도는 시티뷰를 타고 야경을 즐기며 정리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미 해는 졌다. 결정장애로 숨이 멎을 지경까지 간 뒤에 나는 사진을 챙겨 호텔을 나섰고, 시티뷰 야경버스를 기다리는 중국인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페리 터미널로 향했다.
내가 가는 이유는 단 하나, 할아버지께 사진을 드리기 위해서였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행에서 만난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을 주고받는 건 내 경험상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어디 전쟁터로 보내는 것도 아닌데 절차가 어려울 리는 없다. 문제는 나라는 인간이었다. 여행지에서의 만남이 주는 설렘과 즐거움과 그 의미는 일상으로 돌아가면 축소되어 버렸고, 시간이 흐르고 귀차니즘에 눌려 결국 잊힌 관계가 꽤 많았던 것이다. 사진도 직접 드리고 감사했다며 마지막 인사도 하고 싶었다.
호텔에서 출발해 배를 타기까지 한 시간이 채 안 걸렸다. 도대체 내내 고민했던 건 뭐였는지 나는 한껏 들떠버렸다. 와버렸더니 너무도 쉽게 정답이 보였다.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 언제나 오버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안 챙겨도 될 걸 챙기고, 주지 않아도 될 걸 주고, 그래서 더 큰 상처를 받더라도 또 다시 반복하고. 나란 인간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그냥 나답게 오버하는 게 맞았다. 결국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고 즐거워지지 않았나.
거기다 배에서 보는 가고시마의 야경이 시티뷰 야경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한쪽은 가보지 않았지만 확실히 그럴 거다.
페리 안은 낮 시간과 전혀 달랐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고, 몇 안 되는 사람들은 시내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주민들로 보였다.
구석에 앉아 짐도 좀 정리하고 하다가 슬슬 사쿠라지마가 보일 때가 됐지 싶어 갑판으로 나왔다. 사실 이 밤에 뭐가 보일 리는 없고, 반대편의 가고시마 야경이나 구경할까 싶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갑판에 나와 섬을 본 그 순간, 정말 심장이 쿵하는 그 순간을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다.
다시 오길, 밤에 오길 너무 너무 잘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달빛을 받은 사쿠라지마와 살아 있는 화산의 모습은 그 자체로 황홀했다. 사쿠라지마에 있을 때도 밤의 화산을 봤지만 호텔 방에 앉아 보는 것과 섬 전체를 보는 건 전혀 달랐다. 내 화각에 들어오는 모든 광경이 한데 어울려 사진으로는 정말 1%도 전해지지 않는 어떤 거대함, 압박감, 신비함 같은 게 있었다. 거기다 점차 사쿠라지마에 가까워지는 그 자체가 정말 묘했다. 살아 있는 무언가에 ‘다가가는’ 느낌.
섬에 내리자마자 또 다른 감동이 찾아왔다. 번잡했던 도심에서의 하루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공기도 소리도 달랐다. 몇 안 되는 주민들이 서둘러 빠져나가고, 나는 고요한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츄우로 향했다. 보름달과 어우러진 토리이는 밝을 때 보는 것과 전혀 달랐고 신사로 오르는 길 주변에는 설화 속 마물들이 숨어있을 것 같았다.
거기다 그 달. 어두운 섬에서 가장 크게 빛나는 달. 이날 가고시마의 하늘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았다. 이쯤 되니 날이 흐린 건지 화산분출물 때문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는데 사쿠라지마에 와서 알았다. 날이 흐려서 달이 안 보이는 게 아니었다는 걸. 두툼한 망원렌즈 하나 없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크고 명확한 달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저 멀리, 다행히 불을 밝힌 츄우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 저기요~~”
안쪽 문은 닫혀 있었다. 출발할 때만 해도 저녁장사 중일 거라 생각했지만 고요한 섬에 와보니 장사를 할 시간대가 아니라는 건 알겠고, 어쩌면 가족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찾아온 게 아닐까 그제야 문득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인사만 얼른 하고 가면 되니까. 목소리를 조금 높여보는데 문이 드륵 열리며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누구.. 어?”
“안녕하셨어요?”
“아니 이 시간에~ 들어와 들어와!”
할아버지는 정말 너무 기쁜 눈치였다. 그렇게 처음으로 안쪽 공간을 볼 수 있었는데, 가정집과 식당의 경계가 없는 공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벽에는 누렇게 변색된 신문기사, 맥주회사 포스터, 한 장씩 떼어 쓰는 달력(우리나라에서도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손으로 쓴 메뉴 등이 붙어 있는데 아무리 봐도 전부 최소 20년은 되어 보였다.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거대한 상 한 가운데에는 요새는 구하기도 어렵다는 도기로 만든 거대한 화로가 있었고, 그밖에 미묘한 동물 박제, 머리카락이 자랄 것 같은 전통 인형, 무성한 화분들, 10년 전 은행에서 받아온 것 같은 부채, 15년 전 손주가 갖고 놀았을 것 같은 장난감... 그러니까 한마디로 쇼와 느낌 나는 모든 잡동사니가 어우러진 진짜 가정집 거실이었다.
옆으로는 부엌과 연결된 쪽문이 있었다. 이 좁은 식당에는 아마 동네 단골들이 종종 찾아올 것이고, 할아버지는 저 문을 통해 음식을 나르고, 또 같이 앉아 술 한 잔 하면서 세상 얘기도 하고 그러시는 모양이었다. 다행히도 오늘은 할아버지 혼자 계셨고 티비에는 할아버지의 좋은 친구 바다낚시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차 한 잔을 받아 마시며 얘기를 좀 나누다가 내일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고운 꽃무늬의 와지和紙로 만든 봉투를 꺼냈더니 할아버지는 보자마자 뭔가 비싼 건줄 알고 손사래부터 친다. 진짜 별 거 아니라며 사진을 꺼내드렸다.
“이 치킨남방이랑 라멘사진은 메뉴판에 쓰세요. 원래 사진이 낡았길래 새로 찍었어요.”
“좋네. 좋아. 고마워. 정말 고마워.”
너무 좋아하시는 할아버지를 보니 역시나 잘 왔다 싶었다. 할아버지는 주섬주섬 사진을 챙기더니 밥은 먹었냐고 한다. 나이든 분들의 만국공통인 건가. 먹었다고 했지만 어차피 내 답이 궁금하신 게 아니었다. 좋은 생선이 들어온 게 있다며 조금만 기다리란다. 아니아니요! 이건 진짜 민폐다. 하지만 나의 격렬한 저항 따위 못 이길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차 마시며 티비 보고 있으라고(그러니까 대사도 거의 없는 저 낚시 방송을 보라고) 하시더니 휙 부엌에 가셔서 뭔가 분주하게 움직이신다. 시간도 늦었는데 뭘 먹으라고 하시는 걸까. 그래도 오길 잘했지. 저 계단이 2층으로 올라가는 거구나. 이 바닥의 다다미는 몇 십 년이나 됐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앉아 있자니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들고 나타나셨다.
나는 음식 맛에 조예가 깊지 않은 편이지만, 적어도 내가 먹어본 초밥 중 베스트 3위 안에 들었다. 할아버지의 주종목은 라멘이 아니었던 것이다. 키비나고きびなご라는 가고시마 특산 생선이라는데 한국어로 찾아보니 샛줄멸이라는 이름의 멸치 종류. 근데 샛줄멸 사진을 몇 장 보니 저 정도의 볼륨이 나올만한 크기가 아니어서 완전히 같은 종류인지는 모르겠다.
한국에서 횟집을 잘 안 가는 이유가 활어회의 식감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인데, 적당히 삭힌 숙성회는 내 입맛에 딱 맞았고 잘은 모르지만 샤리도 맛있었다. 근데 이 키비나고 스시가 정말 특별했던 건 위에 뿌려진 저 가루 때문이었다. 사진이 뭔가 시치미(일본 조미료)처럼 나왔는데 그게 아니라 귤껍질가루다.
사쿠라지마의 특산품 중에 귤이 있는데(그래서 귤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파는 것이다), 귤껍질을 깨끗이 씻어 말려서 고추를 조금 넣고 곱게 빻은 가루였다. 다른 게 또 뭐가 들어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짭짤하거나 강렬하거나 인공적인 맛이 정말 하나도 없고 스시의 맛을 돋궈주는 귤향의 감칠맛만 있었다. 정말 맛있어서 사쿠라지마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먹냐고 했더니 할아버지 특제란다.
맛이 없어도 있는 척 먹어야 하는 판국에 진짜 맛이 있었으니, 나는 저녁 먹은 건 기억에서 지운 채 깨끗하게 먹어 치웠다. 연신 감탄하며 잘도 먹는 날 보고 할아버지는 당연히 좋아하셨다. 그게 또 실수였다. 할아버지는 낡은 유리병 하나를 가져오시더니 안을 닦고 오늘 막 빻았다는 가루를 모두 부어 넣었다. 집에 가서 밥에도 얹어먹고 요리에도 넣어먹고 하라면서. 이쯤 되니 먹히지 않을 걸 알면서 거절하는 것도 일이었다.
“정말 정말 괜찮아요. 지금도 너무 감사해요. 이거 저 진짜 안 가져갈래요.”
“아니야 이게 뭐라고. 난 또 만들면 되는데.”
할아버지는 두리번두리번 하더니 이번엔 오타이산 캔을 가져오신다. 오타이산은 일본에서 유명한 소화제인데 저건 또 왜. 내가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체할 것 같아 보이셨나..?
“이거 속 쓰리거나 체할 때 먹으면 아주 좋아. 이게 일본에서 한 50년은 된 약이야.”
열어서 보여주시는데 뜯은 지 얼마 안 된 건가보다. 할아버지는 캔 겉면을 또 슥슥 닦더니 귤가루와 함께 봉지에 넣어버린다.
“저 약 있어요. 그리고 체하시면 어떡해요? 집에 하나 두셔야죠.”
“난 또 사면되니까. 갖고 가 갖고 가.”
그러니까, 저도 사면 된다구요.
이 간질간질하고 따뜻한 기분을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다. 조용한 섬마을의 밤, 언제나처럼 홀로 앉아 텔레비전만 보던(그러니까 다시 말하지만 대사나 배경음악이 거의 없다. 바다에서 낚시만 한다)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찾아온 딸 같은 사람이 얼마나 반가웠을지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하지만 고작 며칠 얼굴 본 외국인 관광객에게 이렇게 마음을 써주는 건 정말이지 죄송할 정도의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제 슬슬 일어나야 했다. 마지막 배를 타는 건 상관없지만 마지막 버스를 놓치면 안 되니까. 사실 페리터미널 앞 정류장 시간표를 안보고 와서 좀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 설령 막차를 놓쳐서 고생을 하더라도 이곳에 돌아와 쌓은 기억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연신 아쉬워하며 다음 가고시마 여행의 다짐을 받는 할아버지를 뒤로 하고 길을 나섰다. 돌아보니 달 아래 츄우가 정말 이야기 속에 나오는 공간 같다.
배를 타자마자 뒤쪽 갑판으로 나와 줄곧 사쿠라지마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이 시간에 가고시마로 나가는 사람이 적어서인지 섬에 미련을 둔 사람이 나뿐이어서인지 갑판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정말 바다라는 건 다르구나. 같은 섬이었지만 흔들리는 물결을 사이에 두고 바다에서 바라보는 건 육지에서 보는 것과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이제 꽤 높이 올라간 보름달은 더 넓게 섬을 비추고 있었고, 달빛을 받은 구름마저도 신묘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해안가를 따라 늘어선 불빛이 없던 시절에 바다에서 이 광경을 봤더라면 나는 신을 믿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마지막의 마지막 사쿠라지마가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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