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마도 나름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센간엔, 레이메이칸, 이신후루사토관 등 번듯한 관광지도 여러 곳이고 이부스키나 키리시마 등 근교 여행도 괜찮은 것 같다(물론 난 이 모든 정보를 공항에서 가져온 찌라시에서 얻었다).
그 중 내가 가고시마 시내에서 간 관광지는 수족관과 센간엔 단 두 곳이었다. 수족관에 간 이유는 앞에 썼고, 센간엔을 가게 된 건 바로 이 광경 때문이었다.
열차를 타고 카레이가와에 가던 중 눈앞에 푸른 바다가 펼쳐진 순간에 대해 이전 글에 썼는데, 그 반대편의 모습이 이랬던 것이다. 금세 지나가서 제대로 찍지는 못했지만 일본식으로 잘 가꿔진 꽤 넓은 부지의 정원 같았다.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바다 바로 앞에 저렇게 꾸며놨을까, 저기서 보는 풍경은 얼마나 장관일까. 구글맵을 켜서 저곳이 센간엔이라는 걸 확인하고 일단 체크를 해 두었다.
사쿠라지마 일정을 마치고 가고시마로 돌아와 가게 된 센간엔은 어쩔 수 없는 관광지였지만, 워낙에 잘 꾸며놔서 걷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다. 다만 내가 열차 안에서 궁금해 했던 그 장소에 다다라서 깨달았다. 아, 나는 센간엔을 보러온 게 아니었구나. 여기서 사쿠라지마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었구나.
열차 안에서 본 광경에 비하면 바다도 멀고(열차는 바다 바로 옆을 달린다) 이날 유독 많아진 화산분출물 탓에 사쿠라지마가 잘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조금쯤 실망하며, 두고 온 고향이라도 바라보는 것처럼 정원 끝에 서서 줄곧 섬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일이야. 터키에 갔을 때도 셀축에 다녀온 뒤로 이스탄불에 쉬이 정을 못 붙이더니. 도심과 다른 매력 때문인지 셀축과 사쿠라지마가 좋았기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센간엔을 마지막으로 내 관광은 끝이 났다. 그렇다고 느긋했나 하면 그건 아니었다. 생각보다 빡빡한 일정에 다음엔 기간을 좀 늘려서 와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 다들 2박3일로도 잘만 다녀오는 곳을 7박8일 동안 여행했지만 내 나름대로는 시간이 부족했다. 추억이 담긴 요거트와 마트표 이나리즈시를 사먹어야 했고, 동네 산책도 해야 했고(심지어 그 아무 것도 없던 렘브란트 호텔 주변도 걸었다), 카페에서의 시간도 보내야 했고, 버스 타고 시내 탐방도 해야 했고.. 즐길 것이 산더미 같은데 스무 살 때처럼 여기 찍고 저기 찍으며 헐레벌떡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스무 살 때보다 체력이 현저히 줄어든 것도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강행군을 하지 않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분명하게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간다. 그게 후회를 남기지 않는 법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다만 그 강행군의 기준이 ‘나’라는 것. 예전에 터키 여행기에도 썼지만 결국 남이 보라고 한 곳을 보느냐, 내가 보고자 한 곳을 보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여행을 할수록 느낀다. 어차피 모든 걸 준비할 수 없고 모든 걸 볼 수 없다. 2박3일이든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여행은 기간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순히 방문한 장소의 수로 따지면 한 달을 여행해도 일주일 여행한 사람보다 적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여행이라는 건, 길 위에서 보고 만난 모든 것들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다.
그래서 여행의 준비에 있어 적당함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여행이 좋았냐 내게 묻는다면 그건 결코 효율적인 여행이 아니었다. 몰라서 두근거리고, 알지 못해 불안하고, 예상치 못해 신기한 순간들이 날 풍요롭게 만들었다. 효율적인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혹 실수로 인해 이동하는 데만 주구장창 시간을 썼다고 해도 그 시간 동안 즐거움을 발견했다면 그걸로 충분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오래 전 러시아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이동했을 때 나는 목적지에 대한 기대감 보다는 열차를 타고 있는 그 순간 자체만으로 너무 행복했다. 마호가니색 나무 재질로 마감된 4인실 침대칸은 왠지 모를 동구권의 이질감이 한껏 풍겼고, 침대에 엎드려 도스토예프스키 책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는 더욱 날개를 폈다. 그렇게 나는 달리는 열차 안에서 또 다른 로망을 실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이 너무 변화해서 나 역시 필요한 것들은 바로바로 휴대폰으로 찾지만 언어가 가능한 곳에서는 최대한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최소한의 정보 외에는 직접 부딪혀 느끼고자 한다. 하야토노카제의 일반적인 관광루트를 찾아보고 따랐다면 카레이가와에서의 그 눈물 나는 풍경은 없었을 것이고, 자세한 이동 과정을 찾아봤다면 바다가 보이는 순간 그렇게 놀라지 않았을 테니까.
결국 내 여행패턴이 달라진 이유는 그것이었다. 언젠가부터 그저 휴식이 필요해서, 준비할 시간도 여력도 없어서 별 준비 없이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래도 좋다는, 아니 그러고 싶다는 마음이 깔려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철저한 계획과 잘 조성된 관광지가 의미 없다는 게 아니라 내 감정이 움직이고 행복을 느끼는 지점이 달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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