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의 폭풍같은 삶의 시작을 말하자면 대략 9개월 전. 언제나 그랬듯 지겹게 고민했고, 매번 그랬듯 고민이 무색한 결론을 내렸고, 횟수를 세는 게 무의미할 정도의 또다른 시작을 감행했다. 내 인생이 버라이어티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는데 주변 사람들은 용기, 무모함, 자신감, 어리석음, 역마살, 도전정신, 이상, 뭐 이런 저런 짐작들을 해댔지만 사실 나로선 항상 본질은 같았다.
내 의지가 아니었는 걸.
원했던 게 아니라 그저 선택했을 뿐이었다. 변명이나 해명이 아니라 정말 사실이 그랬다. 애초 생겨먹은 나, 지난 시간 경험이 축적된 나, 자아가 발현된 나, 그러니까 그 모든 게 총체적으로 작용한 나라는 인간에게 어쩔 수 없는 선택과 결론들이었던 것이다. 넝쿨처럼 따라오는 과거들은 결국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 속의 나는 그저 살았다. 살기만 했다. 죽지 않는다면 살아가야 했으니까. 점점 더 변명처럼 들릴 수 있겠다 싶지만 이건 오히려 자기반성에 가깝다. 가장 중요한 것에 있어 단 한 번도 주도적으로 살아오지 못했다는 반성.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위안삼았으나(실로 그렇기는 했다. 정말이지 진심을 다 해 선택했다) 결국 그 '주어진' 상황이라는 것을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한계. 뭔가 쓰다보니 반성보다는 힐난하는 기분이 된다. 또또. 1인칭시점을 벗어나 제3자 취급하는 이 버릇.
2.
추석 연휴가 시작된 뒤 핸드폰을 버렸다. 는 농담이고, 나를 둘러싸고 있던 일상을 버렸는데 그 형태는 고작 핸드폰을 확인하지 않는 것으로 구현되었다. 물론 여유는 똑같이 없었다. 철든 이후 평생 그래왔듯 종가집 맏며느리와 같은 노동을 했고, 고향 떠나 체류중인 베트남 녀석들을 불러 밥먹이고, 본가 차례를 지낸 뒤에는 외가를 챙겼다. 여행 간 동생 역할까지 커버하며 모시고 다니고, 챙겨드리고, 애교도 좀 떨고, 돈도 드리고, 집안 대소사도 챙기고, 산소도 가고, 간 김에 밤도 따고, 물론 풀독이 올랐고, 하루 한 시간도 제대로 못보는 부모님 챙기고, 서울 와서 짐 풀고 30분 정도 눈붙이고 이젠 정말 혼자가 되고 싶어 나온 게 지금. 그리고 점점 더 숨이 막혀 온다. 수백 개의 메세지와 이메일은 볼 엄두도 안나지만 어쨌든 다시 시작할 시간이라는 건 인지했단 말이다. 젠장.
언젠가 많이 하던 생각이 있었다. 다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 다들 이런 과정을 겪고 어른이 되었던 건가? 소름 돋을만큼 두렵고 토할 것처럼 힘들고 손목이라도 긋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목을 따고 싶을 만큼 열받으며 그 성장이라는 걸 한단 말인가? 성숙한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이 이렇다면 거절하고 싶은데 그건 불가능하니 결국 굴복할 수 밖에 없는 건가?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게 이토록 개소리였단 말인가?
그러다 문득, 이제 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때의 좌절이란. 개소리라고 떠들 여력조차 없는 나 자신을 애써 무시하며, 주어진 삶을 그저 살아내며, 정말 몇 초씩 떠올랐다 흩어지는 그 소리. 너, 이대로 괜찮냐. 너라는 인간을 왠지 불쌍하게 느끼고 있지 않냐. 너와 연결된 모든 걸 차단하고 또 거죽으로만 살아가는 것 아니냐. 그 어렸던 시절에도 거죽과 마음은 분리되어 있었지만 적어도 분리되었다는 걸 알고 마음으로 느끼며 거죽을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았냐.
너, 정말 살고는 있는 거냐.
3.
진정한 감정의 배설, 무의식의 발현, 타자로 그려내는 마인드맵, 한편으론 역시 개소리.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쯤 저 밑으로 들어가보려 했으나 애써 털어내고(아니 실은 털어낼 정도의 주체적 움직임은 없다. 그저 피곤한 것이다) 다시 숨막히는 쳇바퀴에 몸을 실을 것이 자명하다. 그래. 쳇바퀴다. 쳇바퀴도 나아가긴 한다. 미친듯이 돌리다보면 그 힘을 못이기고 들썩거리며 약간의 이동을 허용하는 것이다. 대신 방향은 알 수 없다. 아니, 우습게도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질서 역시 혼돈의 일종이라 하지 않던가. 달관한듯 주절거리고 있으나 사실 조급함이 심장을 옥죄고 있다. 서글픈 밤바람에, 고요한 달에, 1년만의 그 음악에, 잔뜩 실려 있던 내가 점점 흩어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