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더욱 그렇다. 1일평균 15시간 근무. 씻고 출퇴근하는 시간 합치면 대략 4시간. 남은 5시간 동안 잠과 개인정비를 해결한다. 주말은 일 50%, 잠 50%. 2016년의 한 달을 돌아보니 "대체 어떻게 그렇게 사세요?"라는, 최근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무리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사실 스스로에게 질문할 필요는 없다. 답을 알고 있으니. 나는 어느새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남과 비교하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고 심지어 예상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내 커리어에 대한 만족도와 나의 일상을 교환했음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인간이라고 고개를 끄덕인지도 오래 되었다.
2.
하지만 일은 일이다.
3.
그래서인지, 순간 순간 나의 머릿속은 머나먼 곳으로 달음질친다. 미세먼지에 희뿌연 아침거리를 보며 훈뚠 한 사발 들이켜던 베이징의 겨울을 생각하고, 해뜨기 전 출근길에 나서며 다음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 새벽부터 배낭메고 나서던 길을 떠올리고, 출장 가방을 싸다 한 켠에 놓여진 배낭과 침낭을 보며 잠시 손을 멈춘다. 애쓰지 않고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1초씩, 3초씩 나타났다 사라지며 나의 일상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4.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는 항상 기록의 압박에 시달린다. 누구도 요구하지 않지만(아니, 반드시 기록을 남기라는 조언은 수도 없이 받았다) 의무감에 전전긍긍하다가, 압박이 흐릿해질 즈음 또다른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돌아와 이중고에 시달린다. 대체 뭐하는 짓인가?
5.
그렇게 한탄하며 빌어먹을 병에 걸린 것처럼 또다시 시작한다. 다음 편이 언제일지 모를 여행기를.
6.
나는 내가 꺼리는 여행을 늘어놓고 싶다. 속되게 표현하자면, 경치나 풍물을 눈에 바르는 여행, 그리하여 관광객의 시선에 머무르는 여행, 그리하여 한 번 찍었으니 두 번 다녀올 필요가 없는 여행, 현지 사회의 역사와 고유한 맥락을 무시하는 여행, 그래서 꼭 이곳이 아니라 저곳을 다녀왔어도 되는 여행, 이리저리 난폭하게 문명의 잣대를 들이대는 여행, 자신의 시간 위에서만 배회하는 여행, 그래서 결국 자신이 바뀌지 않는 여행.
그러나 역시 정작 적어보고 싶은 것은 내가 원하는 여행이다. 나라 단위가 아니라 마을 단위에서 생활 감각을 체험하는 여행, 자신의 감각과 자기 사회의 논리를 되묻게 만드는 여행, 현지인의 목소리를 듣지만 그것을 함부로 소비하지 않는 여행, 카메라를 사용하되 그 폭력성을 의식하는 여행, 마음의 장소에 다다르는 여행, 물음을 안기는 여행, 길을 잃는 여행, 친구가 생기는 여행, 세계를 평면이 아닌 깊이로 사고하는 여행, 마지막으로 자기로의 여행. - 윤여일, <여행의 사고> 中
긴 소개는 필요없다. 이번 여행은 바로 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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