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편은 셀축에 가게 된 계기부터 셀축에 도착해 숙소를 잡기까지 과정에 대한 내용이다. 준비없이 돌아다니는 나홀로 여행자에게 ‘우연’과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자, ‘자유’라는 나홀로 여행자의 특권에 대한 이야기다.
이스탄불에 도착한 첫날 밤으로 돌아가보자. 깊어가는 터키에서의 첫날 밤, 숙소 인원들과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밖으로 나와 밤 공기를 쐬고 있자니 아저씨 한 분이 나오신다. 나란히 벤치에 앉았다.
아저씨: “터키엔 어떻게 오게 됐어요?”
만물상: “그냥 갑자기 휴가 받아서 준비 하나도 안 하고 왔어요.”
아저씨: “내일부터 뭐 할 거예요?”
만물상: “글쎄요, 딱히 계획은 없는데 머리 식히고 조용히 있을 수 있는 적당한 곳에 가볼까 싶기도 해요.”
아저씨: “그럼 셀축이 좋겠네.”
만물상: “셀축이 어디예요?”
이것이 셀축행의 시작이었다. 바로 앞 여행사 유리에 붙은 지도를 보며 아저씨가 설명하길, 적당히 관광객이 있고 적당히 작아서 좋을 거라고. 다들 서부를 많이 가길래 동쪽으로 가볼까 했는데요, 했더니 그쪽은 아직 개발이 안 돼서 교통편도 불편하고 이슬람 문화가 더 강해서 위험할 수도 있단다. 사실 위험하다는 말보다 교통이 불편하다는 말이 더 신경 쓰였다. 길에서 허비할 시간이 없는 단기여행자는 목적지를 바로 수정했다.
밤새 달려야 하는 야간버스는 무려 개인모니터가 달린 벤츠였지만 사실 편안한 여행길은 아니었다. 푹 자고 아침에 눈을 뜨려 했건만 호기심 때문에 잠도 안 온다. 그 유명한 터키 야간버스의 차장오빠에게도 자꾸 눈길이 가고 내 옆에 앉은 언니의 독특한 구두와 화장도 자꾸 훔쳐보게 된다. 버스 안에 간간이 보이는 여행객들에게도 눈길이 간다. 쟨 어느 나라 사람일까, 어디서 또 마주치게 되지 않을까, ‘여행자’ 카테고리에 들만한 인물들을 가늠해 본다.
화장실 다녀온 사이 외국인 여행자들을 잃어버리고 로컬피플 사이에 혼자 덩그러니
멋진 차장오빠의 숨막히는 뒷태
지금 생각해도 야간버스를 타고 달린 시간은 참 행복했다. 휴게소에서 마시는 짜이 한 잔은 차가운 밤공기를 누그러뜨린다. 은쟁반을 들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웨이터를 부르고 돈을 주는 사소한 행동도 즐겁다. 짜이 한 잔 들고 있는 동양여자를 흘깃거리는, ‘쟨 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걸까’의 의미가 분명한 사람들의 눈빛도 재밌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마르마라해를 건널 때. 시동이 꺼지고 문이 열리길래 휴게소인 줄 알고 내려보니 이미 배 갑판이다. 철썩거리는 물결을 헤치고 이름도 이질적인 바다를 건너는 그 밤의 묘한 설레임.
해가 뜨고, 아나톨리아의 대지 위해 햇살이 비치고, 버스는 셀축에 도착했다. 오토갈 옆의 과일가게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어쩌다 안면을 튼 일본 남자애에게 서로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역시 혼자 여행 중이던 한국 여대생과 함께 걷게 됐다. 숙소부터 잡아야 하는데 별다른 정보가 없는지라 이 친구가 알아둔 곳으로 일단 향했다.
그렇게 가게 된 곳이 바다르였다. 빌려온 가이드북에도 나와있는 걸 보면 영업한지 꽤 오래된,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숙소 같다. 들어가자마자 나이 지긋한 노부부가 맞아주는데 두 분과 대강 손짓으로 얘기해보니 영어 가능한 누군가가 온다는 모양. 기다리면서 밥을 먹겠냐는 말에 배도 고프고 해서 대강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두리번 두리번.
같이 온 여대생은 이미 이곳으로 마음을 정했기 때문인지 별 생각 없어 보이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휴식과 맞는 장소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유명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별달리 친절한 구석이 없는 노부부도, 나름 아늑하게 꾸몄지만 조금 어둡고 퀘퀘한 느낌의 실내도(1층이 이 정도면 방 안은 볼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아침식사를 담아 나온 스테인리스 식판이 날 우울하게 한다.
아침마다 이렇게 먹어야 한단 말인가
“여기 머물 거예요?”
“네, 여기가 그나마 가격이 싸요. 다른 데 가시게요?”
“그냥... 가이드북 좀 빌려줄래요?”
역시 학생이라 가격이 가장 중요하겠지. 그녀의 최신판 가이드북을 천천히 넘기자니 무료로 자전거를 빌려준다는, 꽤나 예쁜 분위기의 펜션이 있다. 그래, 느긋하게 묵을 건데 자전거 정도는 있어야지. 사실 자전거는 핑계고 그냥 이곳에서 묵고 싶지가 않았다. 여행할 땐 자신에게 맞는 숙소가 중요한데 여긴 왠지 ‘삘’이 안 온다.
맛이 있지도 없지도 않은 아침을 먹고 있자니 실제 주인인 노부부의 딸이 왔다. 시원시원하게 영어로 인사하는 그녀에게 이 친구는 여기서 묵을 거고 난 아니라는 말을 했다.
“Why?”
하는데, 이 순간, 아 정말 옮기는 게 정답이구나 싶었다. 이미 들어와서 식사까지 한 마당에(공짜는 아니지만) 평소 같으면 우물쭈물하다 그냥 묵었을 텐데, 망설이긴 했지만 역시 말하길 잘 했다. 뭔가 아쉬워하며 살갑게 잡는 것이 아니라 딱 표정이 안 좋아지는 거다. 얼른 아침값을 지불하고, 여대생에게 인사를 하고, 가격이니 뭐니 주절주절 늘어놓는 여주인을 뒤로 하고 무작정 바다르를 나와 펜션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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