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얼까이는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마을 같다. 엄청난 모래바람, 빤히 쳐다보는 낯선 시선들, 이국적인 모습들, 흔들리는 간판, 황토색과 하늘색만이 대비되는 땅과 하늘. 내가 존재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
르얼까이에서 랑무스로 가는 버스를 바로 갈아탄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달리다가 나사들이 하나 둘 빠져나갈 것 같은 작고 오래된 버스다. 차가운 바람이 불지만 태양빛은 강렬하다. 버스에 올라타니 여과없이 들어오는 햇빛에 모래와 먼지들이 반사되어 온통 부옇다. 창문에는 모래가 소복히 쌓여있고 차창밖으로 보이는 것 역시 온통 모래, 모래다. 흔들거리는 버스가 모래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눈에 보인다.
장족들을 많이 보긴 했지만 한족영향권이 계속 컸던 모양인지 이렇게 장족뿐인 버스가 갑자기 낯설다. 장족은 원래가 호전적인 유목민족이었다고 하는데 확실히 한족과 있으면 비교가 된다. 나는 인종의 특성이라는 것이 워낙 개인차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남자를 비교했을 때 한족들은 마르고 체구가 작고 눈이 찢어졌고 장족들은 기골이 장대하고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큼직한 것이 한눈에 구분이 간다.
두꺼운 야크털가죽 옷을 입은 장족들 뿐인 버스. 그동안 한국노래를 번안한 중국노래가 심심찮게 나오던 버스들과 달리 전통 티벳노래만이 흘러나온다. 그 묘하고 이질적인 선율에 더더욱 몽환적인 느낌이 든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모래먼지 속에서 <바그다드 카페>를 떠올렸다. 내 머릿속에는 'calling you'가 계속 맴돈다. 앞자리에 앉은 서너살 된 꼬마가 자리에 일어서서 등받이를 붙잡고 돌아서는데 참 묘하게 생겼다. 귄터그라스의 책을 영화화한 <양철북>의 오스카와 정말 닮은 아이. 희귀한 병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말 묘하게 생겼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그저 나를 빤히 바라보는 눈빛마저 낯설다.
모래, 바람, calling you, 바그다드 카페, 양철북, 티벳, 모든 것이 뒤섞인 채 잠이 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눈을 떠도 모든 것이 뒤섞인 공간에 내가 있는 것은 여전하다. 내가 꿈을 꾸고 있나. 다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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