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17. 21:07 ▶ scrawl

내국인에 외국인에 난민까지 찾아든 제주도에 나는 태어나서 딱 한 번 가봤다. 3박4일의 짧은 일정, 그것도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였으니 까마득한 옛일이다.

 

요샌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때만 해도 학보사 기자의 방학은 참 알찼다. 릴레이로 벌어지는 다음 학기 기획회의는 기본이고, 매 방학마다 반드시 실무교육과 세미나를 했었다. 실무교육 때는 현역 기자나 공부노동자인 선배들에게 기자로서의 교육을 받았고, 세미나는 보통 지방으로 가서 단합회를 겸해 이루어졌다. 이렇게 말하면 내내 술 퍼먹고 놀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좌장격의 선배 지휘 하에 읽고 듣고 토론하는 시간이 주였다(물론 항상 가열했던 것은 아니다. 보드리야르가 자장가를 부르고 들뢰즈가 토닥여주기도 했다).

 

여튼 1학년 겨울방학의 목적지는 제주였다. 그땐 말이야, 하며 노인네 티를 내려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오래 전이니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감도 안 오는 남쪽나라를 상상하며 즐겁게 가방을 싸는 우리들에게 사전 교육자료로 던져진 <순이삼촌>은 눈길을 끄는 존재가 아니었다. 여행을 맞아 나는 인생 처음으로 가죽 부츠를 샀다.

 

생각해보면 분명 관광지를 간 것 같기는 하다. 어떤 폭포 앞에서 동기들과 찍은 사진이 남아 있고, 전통마을 같은 곳에서 안내를 해주신 아주머니의 “제주 남자는 만나지 마라”는 말에 왁자지껄 웃었던 기억이 남아 있으니까.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겨우 끄집어낸 소재가 이것뿐일 정도로 내게 제주는 내내 4.3이었다.

 

 

 

4.3의 흔적을 찾는 일정 내내 흐리고 이따금씩 비가 내렸다. 음침하게까지 느껴지는 날씨를 배경으로 순이삼촌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중 압권은 역시 큰넓궤였다.

 

버스는 어느 한적한 시골길에 멈춰 섰다. 우리는 안내를 해주신 4.3연구소 소장님을 따라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걷기 시작했다. 찌그러진 철조망을 타넘고, 길도 없는 풀밭을 하염없이 걸었다. 때론 풀숲을 헤치고 때론 너른 들판을 감상했다. 저 멀리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노루인지 고라니인지 모를 녀석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선명하다.

 

한창 걷다보니 멈춰선 선발대가 웅성웅성 모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말이 안 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돌무더기 사이로 난 구멍을 통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수평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 인적 없는 들판을 걸어 땅속으로 들어간다니 갑자기 이게 무슨 대모험이란 말인가. 어차피 퇴로는 없고, 갈만하니 가라고 하겠지 하며 한명씩 돌 사이로 사라졌다. (이때만 해도 그냥 대자연 서바이벌이었는데 최근 사진을 보니 가는 길에 안내판도 설치되어 있고 여러모로 정비를 한 것 같았다.) 

 

우리의 모험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기본자세는 낮은 포복이었다. 플래쉬가 충분치 않아 암흑 속을 기어야 했고, 두툼한 패딩점퍼의 등어리가 갈려나갔다. 새로 산 부츠는 앞코가죽이 다 닳아버렸다. 덩치 큰 남자동기가 좁은 통로에 걸려 하체를 제대로 운신하지 못해 선배들에게 욕을 들어먹은 건 두고두고 놀림거리의 소재였다. 앞으로도 뒤로도 줄지어 기어가고 있으니 포기도 휴식도 없이 무조건 전진이다. 그렇게 제주 온다고 한껏 꾸민 스무살 우리들은 흙투성이가 되어 동굴 내부에 도착했고, 거기서 난생 처음 탄피라는 것을 보았다.

 

 

 

제주 생각이 난 건 SNS에서 무심코 본 이 기사 사진 때문이었다.

 

 

아마 4.3 언저리였으니 벌써 몇 달 전인데, 저 사진을 보자마자 큰넓궤의 기억이 떠올라 캡쳐하곤 언제나 그렇듯 잊고 있었다. 분명 당시에 저런 사진을 실었던 것 같아 먼지 쌓인 축쇄판을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사진의 주인공은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 그 남자동기가 아닐까 싶다.

 

내게 제주는 언제나 이랬다. 좁고 축축한 동굴, 어둠, 비구름, 거기다 우리끼리 찍어서 현상한 사진보다는 사진부 선배들이 찍어 신문에 실린 사진이 기억에 박혀 컬러가 아닌 흑백의 이미지였다. 아마도 그래서 이후 단 한 번도 제주도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대단한 역사적 의식 때문이 아니라 그냥 마음이 가지 않았다. 베트남의 내 고향이 그렇듯 제주는 놀러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때보다 더 의미 있는 방문을 할 수 없다는 것도 이유였던 것 같다. 안내판도, 표지도, 때론 길도 없는 곳들을 완벽한 전문가의 동행으로 다녔으니 그야말로 행운이고 감사한 일이었다. 4.3이 지금과 같은 상식은 아니었던 시절, 내게 주어진 소중한 경험은 오히려 내내 제주를 기억하게 했다.

 

예단할 수는 없지만 제주에 갈 일은 앞으로도 없지 싶다.

'▶ scrawl'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녀의 기록과 나의 책  (0) 2018.10.01
나의 음악  (0) 2017.09.10
팔찌  (0) 2016.09.18
posted by 만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