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7. 01:11 ▶ scrawl

당장 해야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불안한 상황이지만 마음은 왠지 풍요롭다. 과거에 대해, 미래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하고 위로하고 채찍질하고 응원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즐거울 땐 더 즐거웠고 힘들 땐 안심할 수 있었다.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이 달라졌지만, 적어도 친구로서의 역할에 내내 충실했고, 덕분에 어떤 힘든 시기도 너무 외롭지 않게 견딜 수 있었다.

 

우리는 더이상 헛된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하지만 적당한 타협은 더더욱 하지 않는다. 그 많은 고민과 아픔과 눈물로 배운 건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법과, 원하는 걸 찾아갈 수 있는 힘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고,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움직이게 하는 판단력이다. 피폐한 안정감을 원하지 않고 열정없는 지리멸렬한 인생도 싫다. 돈이 없을 때 얼마나 힘든지 알지만 마음이 없을 때 얼마나 괴로운지도 안다. 20대의 과오를 삶의 자산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의 깨달음을 나누고 격려할 수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다.

 

희망찬 것처럼 썼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어두운 터널을 서서히 탈출하며 중대한 결정의 기로에 선 녀석이나, 두려울 정도의 엄청난 시작을 앞두고 압박감에 숨이 멎는 나나 '우리는 뭐가 이렇게 맨날 어렵냐'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래도 지금에 와서 마냥 우울하지 않은 건 우리가 좀 더 나은 인생을 위한 고민을 해 왔다는 것, 그래서 힘겨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언제쯤 찬란하게 빛날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생 별 거 없다고, 그냥저냥 적당히 돈벌고 적당히 지루해하며 사는 거라고 포기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수없이 흔들렸다고 생각했지만 나름 그 상황에서는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의 나침반에 최대한 어긋나지 않는 방향을 선택해왔다. 돌아보면 실수였고 잘못이었지만 그 어떤 순간도 진심으로 고민하지 않은 적이 없기에,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젊음에 조금은 당당할 수 있다. 꿈이 있어 빛나는 게 청춘이라더니 그 말이 맞았다. 반짝이지 않는다고 한탄했던 우리의 젊음도 돌이켜보면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소주 한 잔에 눈물을 쏟고 라디오헤드 노래를 열창하며 현실의 무게를 토해내던 시절을 함께 한 친구와 여전히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누구나 사는 인생이지만 누구나 걸을 수 없는 치열한 길에 서서 같이 걷는 친구의 존재에 위로를 받는다. 물론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의 기억이 오늘의 힘이 되었듯 오늘의 기억은 먼 훗날 또 다른 힘이 될 거다. 그렇게 한 발짝씩 나아가는 우리는 여전히 젊음을 살아간다.

'▶ scraw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잔잔한 바다는 노련한 사공을 만들지 않는다  (1) 2015.03.09
상자를 열면, 봉인해제  (0) 2013.09.06
성공했나요?  (0) 2010.10.24
posted by 만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