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내 삶에 한번쯤은, 걷는 기쁨
슬슬 올리는 리뷰들이 어째 최근 게 없다. 이 책도 올해 2월이었나.. 서점에 깔린 날 읽었으니 지나도 너무 지났는데 왜 갑자기 올릴 생각이 들었는지. 여튼 가벼운, 그러나 돈이 아깝지 않은 읽을거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추천하는 책이다.
젊은 친구의 좌충우돌 국내무전여행기라니 왠지 흔해빠진 아이템같지만,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최근 여행도서의 시류와 관계가 있다. 떠날 수 없는 현실을 책으로 충족시키며 살아온 나는 오래 전부터 대형서점의 여행기 코너를 훑는 것이 취미이자 습관이었는데- 어느 시점부터 여행도서의 유행이 바뀌었달까, 비슷한 사진에 비슷한 글의 책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책들이란 일단 올컬러의 사진이 내용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괜찮은 북디자인이지만 특색은 없고, 짧막한 글들은 뭔가 감성적이지만 마음을 울리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디자인에 신경 쓰고 사진 많이 넣은 책이 무조건 싫다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전지영씨의 <탄산고양이 집 나가다>는 거창한 여행기도 아니었고 이모티콘 작렬에 저자는 글도 사진도 전문가가 아니었지만 그녀만의 솔직하고 재밌는 입담이 읽는 내내 유쾌했다. 그러니까 요는, '재밌는' 책이 많지 않다는 것.
이 책은 가격이 싸고, 사진이 적고, 글이 많다. 출판계의 불황 때문인지 종이값의 상승 때문인지 날로 올라가는 책의 가격은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는데.. 두께에 비해 가격이 매우 만족스럽다. 그 이유는 아마 두번째로 꼽은 이유 때문이 아닐까. 몇 장 안되는 사진과 흑백인쇄가 취향이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여행기라는 게 사진으로 일일이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할 때가 있다. 글을 읽으며 상상해보는 즐거움과 설렘이 최근의 책들에는 너무 없단 말이지. 페이지마다 꽉꽉 채운 글도 마음에 든다. 사실 디자인은 결코 마음에 든다고 할 수 없는데 때론 이런 소박함으로 무장한 책이 좋을 때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나름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다른 항목이 취향과 맞아 떨어져도 책이라는 게 글이 재미없으면 종잇장에 불과하다. 나도 쓰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지만 적어도 잘 쓴 글을 판별하는 눈은 있다. 도대체 이 돈을 주고 이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책들이 쏟아지는 걸 생각하면 이 책은 그야말로 읽는 즐거움에 충실하다. 사실 여행기라는 게 대문호의 필력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고, 때론 깔깔 웃고 때론 안쓰러워하며 '함께 여행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장땡 아닌가. 저자가 여행을 통해 '걷는 기쁨'을 느꼈다면 나는 '읽는 기쁨'을 느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