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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春光乍洩 OST - Happy Together

만물상 2008. 10. 30. 22:25

사실 내 나이가 한창 홍콩영화가 붐이었던 세대와는 좀 차이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홍콩영화를 좋아했다. 딱히 작품성을 따졌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그 특유의 분위기가 좋았다. 틴에이저 잡지가 한창 나오던 무렵에 <스크린>과 <로드쇼> 등을 줄창 봤으니(그렇다. 어릴 때의 꿈 중에는 영화감독도 있었다) 괜히 홍콩영화계가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고.
가장 예쁜 사람은 오천련이라고 생각했고, <불초자열혈남아>를 보고 한동안 여명의 노래만 듣고 다녔고, <종횡사해>의 장면들을 평소에도 보고 싶어서 비디오를 틀어놓고 정지시킨 후 필름카메라로 찍어서 인화하기도 했다(써놓고 보니 웃음이 난다). 지금도 내 서랍에는 홍콩 영화음악을 복사해놓은 카세트테이프가 있고, 비디오 가게가 문을 닫을 때마다 달려가서 사모은 비디오테이프들이 있다.
어이없는 코믹물도 무술씬이 반 이상인 액션물도 특유의 느와르도 다 좋았다. 장예모나 서극처럼 굵직한 감독도 좋지만 진가신이나 왕가위를 좋아했던 것 같다. 특히 이유는 모르겠는데 왕가위와 절친한 친구이자 촬영감독인 크리스토퍼 도일을 좋아해서, 잡지의 독자엽서에 그의 이름을 줄창 써대기도 했다. "이 사람 기사 좀 실어주세요."
지금의 홍콩영화계는 잘 모른다. 왠지 내게 홍콩영화는 앞에 '19XX'라는 연도가 붙어야 될 것 같다. HD보다는 브라운관이고, 패셔너블한 차림새보다는 품이 큰 코트나 물빠진 청자켓이다.

그런 내가 가장 좋아했던 배우는 장국영이다. 사실 누가 싫어했겠냐마는.
작품 속의 모습이 언제나 좋았던 건 아니다. 예를 들어 <가유희사>에서의 그 독특함은 어린 나이에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지. 그래도 이 배우, 정말 좋아했다. 첫사랑이 누구였냐고 물으면 장국영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다. 아직도 기억하는 게, 예전엔 영화잡지 부록으로 별의별 포스터나 책자가 딸려왔는데 그 중에 홍콩 배우들의 개런티를 사진과 함께 실은 책자가 있었다. 1위는 주성치였고 그 외에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다 나왔는데 장국영의 개런티가 의외로 낮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장국영은 자기가 마음에 드는 영화라면 노개런티로도 출연하기 때문에 평균개런티가 낮다'고 적혀있었다. 그걸 보고 내 칭찬도 아닌데 괜히 뿌듯해했다.
가장 마음에 박혔던 건 그의 눈이었다. 딱히 어두운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 때론 허무함이 느껴지고 때론 애수가 느껴지는 그 눈이 참 밟혔다. 그리고 그 눈이 영원히 감겼던 그때 참 많이 울었고, 그 뒤로도 몇년간 4월 1일에는 그의 노래를 듣거나 영화를 보며 울었다.
 


영화음악 하나 올리려다 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하기사 처음으로 올리는 홍콩 영화 음악이니까. 해피투게더, 다른 제목으론 춘광사설, 또 다른 제목으로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개봉당시엔 나이가 안되서 볼 수 없었던 영화, 정말 심장이 터질 만큼 아르헨티나에 가고 싶게 만들었던 영화다. 장첸이 우슈아이아에서 양조위의 흐느낌을 듣는 장면, 그의 아픔을 대륙의 끝에 놓아주는 장면은 어찌나 강렬했는지. 왕가위가 피아졸라와 프랭크 자파가 없는 해피투게더를 상상하지 못하듯, 나는 왕가위와 양조위와 장국영이 아닌 해피투게더를 상상하지 못한다.

그런데 벨소리를 받으려 할 때도 싸이월드 배경음악으로 넣으려고 했을 때도 영화 <해피투게더> 삽입곡이라고 해놓고는 이 곡이 아닌 경우가 태반이었다. 대부분 원곡인 터틀즈의 곡. 하지만 영화에 삽입된 곡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프랭크 자파의 곡을 허락받지 못한 왕가위가 대니 청에게 부탁하여 같은 느낌으로 부른 곡인데, 특히 경쾌한 도입부분이 잔잔한 원곡과 전혀 다르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의 야경과 이어폰을 꼽고 있는 양조위의 표정을 기억한다면 터틀즈의 곡이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지 알 수 있다.

곡만 올려놓으려 했던 건데 역시 그렇게 되지는 않는구나.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 아마도 오늘밤은 피아졸라의 선율을 자장가삼아 아르헨티나를 꿈꾸게 될 거다.



※ 적막한 블로그지만 혹시나 OST를 찾아 헤매다 여기까지 오게 된 분이 계실까하여 미리 적습니다.
음악파일 원하시면 말씀해주세요. 제가 가지고 있는 CD, 리핑해서 mp3 파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워낙 구하기 힘든 음반이다보니 이 정도 공유는 괜찮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