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cra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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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2008. 9. 9. 04:27
차라리 어슴푸레하게 밝아오는 시간이라면 낫겠는데 창밖으로 살짝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한밤중이다. 사실 창밖 풍경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면으로 아파트가 보이고, 측면으로 아파트가 보이고, 정면과 측면 사이로 그 너머의 아파트가 보인다. 그저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은 나의 소박한 꿈은 언제쯤 이뤄질까.
아파트가 겹겹이 들어찬 모습은 꼭 지금의 내 인생같기도 하다. 도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쯤, 탈출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쯤 떠나려고 했는데 대체 그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대로 사는 게 비정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여겨지는 세상에서, 결국 떠남은 그 자체만으로 비겁해지는 걸까. 아니다. 사실 비겁한 건 나다. 굴레를 벗어던진 이후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