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mad/'04 Tibet

[티벳] 3. 정말 희한한 놈, 와타루

만물상 2008. 6. 6. 03:31



머리를 감은지 어언... 잘 모르겠다. 아무튼, 감아야겠다.-_-

더이상은 모자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수돗물도 해 떠있을 때 잠깐 나오는데, 언감생심, 세수라도 하는 게 다행인 상황. 그러나!!! 이제는 기필코 감겠다고 돌고래와 의기투합해 대야와 세면도구를 준비하고 보무도 당당하게 마당으로 갔다.

보온병에 든 물도 동원하고 주인집딸(18세, 삔관 종업원)에게 부탁해서 뜨거운물과 찬물 주전자를 지원받았다. 그걸 조심스레 섞은 뒤 돌고래와 함께 서로 부어주며 차례대로 감았다. 한국에서 같으면 샤워기를 틀어놓고 감을텐데, 쓸데없는 물낭비를 절실하게 느낀 순간이었다. 반 바가지 퍼서 둘이 세수하고 이닦고 별걸 다했다.

아무튼 온 숙소가족을 긴장케하며 난리를 피운 머리감기는 일단락됐다.
와타루는 감지 않은 채......-_-


와타루... 정말 희한한 놈이다. 그때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고 지금도 만날 생각없는 녀석. 오죽했으면 일주일을 함께 여행했는데 이럴까.=_= 딱히 성격이 나쁘거나 한 건 아닌데 스물여덟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너무 생각이 어린 놈이었다. 와타루가 헤어질 때 우리 이메일 주소를 물었는데 가르쳐주기만 하고 와타루 것은 묻지 않았다.;

처음엔 정말 여행 경험이 많은 고수인줄 알았다. 청뚜 도미토리에서 첫 대면을 했을 때 나, 돌고래, 와타루 이렇게 셋이 있었는데 갑자기 옷을 훌렁훌렁 벗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감있게 속옷을 보여주는 와타루를 보며 '그래! 여행자는 저런 거야!' 라며 쓸데없는 감명을 받기도 했던 지난날이었다. 쏭판의 horse trekking 이야기를 했더니 당장 우리와 같이 가겠다고 했을 때도 '오오... 이것이 나홀로 여행의 묘미!!!' 라며 몸을 떨었던 것도 사실이다.

와타루는 양치질 빼고는 그 어떤 씻는 행위도 하지 않는다.-_- 솔직히 이런 여행에서 우리도 매일같이 샤워하는 건 기대 안했지만 나름대로 아침에 눈꼽은 떼어야 하지 않겠는가... 양치질도 우리가 닦을 때 겨우 한다. 머리감고 씻는 걸 멀뚱멀뚱 보다가 맑은 물을 달라길래 드디어 씻는가 했는데, 렌즈를 씻어야 한댄다.-_-

저 쉐끼!! 저 한대야면 세수를 네번은 하겠어!!! 저 뜨순물이 얼마나 귀한건지 모르고!!!!!

으으... 거기다 돌아다니는 것도 오지게 싫어한다. 쏭판에서는 나와 돌고래 둘이서만 마을을 돌아다니고 밥을 먹기도 했다. 그런데 물건 사는 건 엄청 까다로워서 청뚜에서 쇼핑할 거 있다고 해서 따라갔다가 뒤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얼마나 세웠는지 모른다.-_-

하지만 가장 이상한 건 여행준비가 철저하지 못하다는 거다. 하나에서 열까지 다 깐깐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주의는 아니지만, 비자만료일까지 영사관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건 좀...... 당장 쏭판을 여행하고 구채구까지 보면 적어도 며칠 잡아야 하는데 얼마 뒤면 비자가 만료된다고 한다. 거기다 여기서 트래킹하고 구채구보고 이것저것 한 뒤 청뚜까지 가면 비자비가 없대나. 아니 그러면 애초에 비자가 일주일도 안남은 상황에서 이 먼 곳까지 오면 안되는 거 아닌가? 거기다 1일에 100위안인 트래킹, 1박2일도 되는데 왜 2박3일이 좋다고 하냔 말이다. 그러면서 남은 돈을 세는 돌고래를 보며

"오우, 돌고래. 너는 부자구나."

한다. 쉣...-_-

와타루가 티벳가지말고 남쪽으로 같이 가자고 계속 꼬셔서 처음엔 조금 흔들렸다. 겨울티벳, 겨울티벳 했지만 사실 너무 추웠으니까. 앞으로 루트를 말해주자 숙소아저씨고 마이크고 다들 여기보다 춥다고 해서 마음이 약해졌다. 하지만 이놈 하는 꼴을 봐서라도 기필코 라싸에 가고 말리라.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경험해본 듯 이야기한다. 도대체 왜 가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폼이다. 그래, 너한테 내 오래된 꿈을 이야기한들 니가 알겠니.

이렇게 말하면 별것없는데 괜히 사람 하나 미워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의 험난한 여정을 알게 된다면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