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11. 여행의 끝에서
벌써 1년여 전의 여행이고 여행기를 쓴 지도 오래됐고 그나마도 두서없이 기억나는 몇 가지만 끄적대긴 했지만, 그래도 유종의 미는 거둬야 할 것 같아 마무리로 몇 마디.
마지막 날 밤. 언제나 그렇지만 여행의 끝은 단순히 아쉬움이라고 표현하기엔 2% 부족한 미묘한 마음이라, 괜히 싱숭생숭해서 호텔 근처의 스타벅스로 향했다.
사실 센다이에서는 여행의 시작에 대한 설레임으로 느끼지 못했지만 도쿄로 온 뒤로 마냥 좋았던 건 아니었다. 물론 도쿄 자체는 좋았지만, 이방인으로서의 내 상황이 즐겁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서글프기도 했달까... 아니, 이건 외국 여행 중이라는 것과는 다른 문제. 아마 서울에 있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도시는 어딘가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길을 가는 전철역에서 나는 몇 번을 그냥 그렇게 서있었다. 정신없이 빠르게 이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아마도 내 모습을 봤던 것 같다. 내게 현실로 다가오는 건 여행 중인 내가 아니라 서울에서의 나였고, 또다시 외로워지고, 답답해졌다. 지치고 지쳐 여기까지 왔건만 즐겁게 떠나지 않은 여행은 역시 즐겁지 않다는 것만 깨달은 셈이었다.
그러다가 도쿄에 있는 선배들을 만나 술자리를 갖게 됐다. 글쎄다. 나는 아직 젊고, 인생에 대한 그 무언가를 깨달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결론은 얻을 수 있었다. 조급해하지 말자는 것. 답이 없는 인생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부끄럽게도 열심히 살아가는 선배들 앞에서 울고 말았으나 그래도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눈물은 거짓이 아니었지만 난 이미 나의 짐을 어느 정도 내려놓았다는 것... 그 역시 내가 인정해야 할 부분이었다.
인생은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니까. 이렇게 갑자기 훌쩍 떠났듯이 언젠가 또다른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돌아가면 또 같은 일상이 반복되겠지만 여행의 기억들로 내 일상은 조금쯤 풍요로워질 것이고, 아마도 다시 살아나갈 힘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연료가 떨어질 때쯤엔 또다시 탈출구가 필요해지겠지.
겨울밤, 작고 정겨운 술집에서 따뜻한 사케를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던 그날은 지금까지의 삶에서 중요하게 꼽을 수 있는 몇 안되는 날이 되었다.
스타벅스를 나오니 생각치못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행다니면서 눈은 맞아봤지만 비는 처음. 원래도 비를 좋아하긴 하지만, '비오는 도쿄의 풍경까지 볼 수 있다니' 하는 착한 마음이 되었다. 이날 오후까지, 그리고 이 비가 그친 다음 날에도 하늘은 무척이나 맑았기에 잠시 동안의 이 비는 내게 선물처럼 느껴졌다. 차분해진 거리만큼이나 차분해진 마음으로 나는 내 여행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행복했어. 이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끝없는 절망 속에서 못 빠져 나올 줄 알았는데.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서울로 돌아가자. 내가 속해있는 그 곳으로.
- 2007.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