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 정치
1.
신천지나 허경영이나 환빠나.. 다 마찬가지다. 종교를 칭하든 정치를 빌리든 역사를 끌어오든 결국 사교(邪敎)의 성격으로 이득을 취하는 세력이라는 건. 관심을 줌으로써 더 뜨거나 몰랐던 이들이 빠져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 이슈화가 조심스러운 건 알지만 촉을 세우는 건 여전히 중요하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병폐를 투영하는 셈이고, 결국 건강한 사회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사회의 허점이자 불안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걸 제거한 사회를 원하는 건 아니다. 그건 오히려 디스토피아기도 하고, 무엇보다 불가능하니까.
2.
나는 모든 종교를 동일하게 본다. 역사, 문화, 국가, 민족, 인종, 조직 등 다양한 변수로 인해 발현이 다르고 운용이 다를 뿐 기본 원리는 같다고 보는 것이다. 대중이 심리적으로 미혹되는 대상들은 결국 비슷한 측면이 있다. 어쨌든, 공동체가 동의한 가치를 훼손하고 해악을 끼치는 게 아니라면 신천지든 기독교든 내겐 똑같다.. 라고 하면 짧은 문장으로 인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니 근데. 이단이나 사이비가 붙지 않은 종교라고 해서 우리 사회를 더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던가? 귀감이 되는 정말 소수의 성직자들을 통해 그 종교를 판단하는 게 오히려 잘못된 일반화 아닌가? 적어도 내 눈으로 확인한 종교는 인간의 욕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자신의 나약한 면을 절대자(혹은 절대규범)를 통해 상쇄시키고자 하는 욕망. 오해할까봐 말하는데 내가 종교를 싫어한다고 해서 저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욕망 자체는 어찌보면 자연발생적이고 매우 인간적이다. 다만, 주의할 뿐.
3.
전 세계가 혐오와 차별과 멸시의 폭풍 속에서 허우적대는 2020년의 봄. 서로를 향해 서슴없는 증오를 내뱉는다. 나로 말하자면 정확히 똑같은 측면에서 증오가 생기지 않는다. 시진핑과 트럼프를 싫어하는 정도가 다르지 않고, 한국의 수구집단과 일본의 우익세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같다. 사실 좀 웃긴다. 외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한국인을 보며 우리완 다르다고 욕을 하고 선긋기를 하지만,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을 보며 그 나라 사람들을 싸잡아 욕한다. 한국 내에서는 보수적 가치를 선호하지만 외국의 진보적 소수 시각에 열광한다. 국가와 민족이 다르고, 행정부와 국민이 다르고, 국가와 행정부가 다르다는 기본적인 것들을 망각한다. 나원참. 욕도 기준을 좀 정해서 하시라고.
4.
나는 작년부터 유니클로는 절대 가지 않고, 일본여행을 계획하지도 않는다. 일본의 새로운 컨텐츠에 접근하지도 않는다. 동시에 나는 유년기부터 함께 한 다양한 일본 문화 컨텐츠를 여전히 좋아한다. 내 입맛에 맞는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외국인 신분을 들키지 않으면서 외국을 즐길 수 있는 일본여행을 좋아한다. 일본이라면 무조건 욕하고 보는 시절이 되어, 나는 묻고 싶다. 이명박근혜가 대표하던 한국정부가 날 대변한다고 생각했었는지. 아베정부가 나쁜 거고 일본국민은 다 좋다는 게 아니다. 만약 박근혜가 마음껏 국가를 휘두르는 꼴을 보면서도 국민의 80%가 박수를 보낸다면, 그걸 외국에서 본다면, 분명 20%에 속할 나를 부디 잊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 80%에 대해서도 ‘저 나라 다 병신’ 하고 마는 게 아니라, 어떤 사회고 어떤 시스템이길래 국민의 대다수가 현명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지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접근해주길 바랄 뿐이다. 난 ‘통칭하는’ 일본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다. 국가 간 법도 예의도 집어치운 일본인에게, 역사의식이 없는 일본인에게 분노한다. 그리고 그들과 다를 바 없는 한국인에게도 똑같이 분노한다.
5.
재난긴급생활비 지급 이슈를 통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보편적 복지를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재용 아들한테 공짜밥을 줄 필요 있냐고 거품 물지 않았나? 왜 가난한 사람을 ‘선별’하지 않고 부자한테도 퍼주냐고 하지 않았나? 똑같이 준다고 불만이 없을까. 내가 연봉 1억인데 갑근세를 얼마나 내는지 아느냐며 몇 십 만원 못 받은 것에 대해 열 받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부나 지자체의 이번 정책 자체에 대해서는 다른 거 필요 없다. 불만이 아니라 의견을 내면 된다. 욕이 아니라 생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 타협과, 이왕이면 양보까지도 필요하다. 5천만 명이 만족하는 정부도 정책도 정치인도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선택한 정치제도는, 아니 인간사회의 모든 제도는 살아있는 생명과도 같아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논의하고 협상하며 발전시켜야 한다. 정책에 복지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만으로도 빨갱이 취급받던 시절이 있었지만(멀지도 않다. 오세훈 질질 짜고 보선 치렀던 게 10년도 안 됐다) 최근 선거에서 복지공약 없던 정당이나 후보가 있었느냔 말이다. 당연하지만 우리 사회는 변화하고 있다.
6.
제발 좀 정치에 관심을 가지란 말이다. 미국이나 일본이 우리보다 돈이 없나 자원이 부족하나. 근데 바이러스 하나에 막장 되는 거 안보이나. 체구 작은 여성의 장풍에 맞고 쓰러지는 개지랄쇼를 하고도 당선이 되는데 뭐 하러 열심히 일하고 시정을 돌보나. 무조건 대통령 좋아할 필요 없고 무조건 어느 당 지지할 이유도 없다. 집에 날아오는 선거공보 꼼꼼히 보고, 선관위 홈페이지에서 후보 정보도 보고, 최소한 비례후보 앞 번호 정도는 살펴보고, 노력을 좀 하라고. 다 공짜 아니라고. 당하고 울지 말고, 쳐맞고 후회하지 말고, 민주주의 사회는 거저가 없다는 걸 좀 알라고. 정치에 뛰어들거나 시민운동을 하라는 게 아니라, 다들 그렇게 좋아하는 ‘시민’의 의무라는 걸 좀 깨달으라고. 누리는 만큼 책임이 있다고. 역할을 해야 된다고. 민주주의는 원래 싸우는 거라고! The government of a nation itself is usually found to be but the reflex of the individuals composing it. The government that is ahead of the people will be inevitably dragged down to their level, as the government that is behind them will in the long run be dragged up. In the order of nature, the collective character of a nation will as surely find its befitting results in its law and government, as water finds its own level. The noble people will be nobly ruled, and the ignorant and corrupt ignobly.(새뮤얼 스마일스)
7.
시간도 없고, 하나하나 깊게 생각하면 끝이 없는 것들이다 보니 언제나처럼 의식의 흐름대로 단편적인 문장을 떠들고 있다. 아무래도 이것만으로는 부연적인 설명이 필요해 보이지만 귀찮으니까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