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공룡과 사쿠라
사쿠라지마는 일본한자로 桜島라고 쓴다. 벚꽃의 그 사쿠라가 맞다. 한창 봄기운 완연할 시기의 여행인지라 섬 이름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던 게 사실이지만, 섬과 벚꽃의 특별한 연관성을 찾지는 못했다. 일본 어딜 가나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꽃나무가 사쿠라니까. 일본의 하나미(꽃놀이)를 경험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니고 가고시마에 오자마자 카레이가와의 기막힌 풍경을 봤기에 딱히 벚꽃을 찾아 나설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일본인, 정확히 츄우 할아버지의 생각은 다르셨다. 하나미 명소에 가서 왁자지껄 놀든 동네 근처를 산책하며 소소하게 즐기든 어쨌든 간에 사쿠라의 계절은 일본인에게 특별한 것이다.
“여기 와서 사쿠라 구경했어?”
“숙소 근처에도 있고.. 아예 사쿠라 길도 만들어져 있던데요?”
“요 아래 공원에 가봐. 작은 산이 있는데 거기 위에 공원이 아주 경치가 좋아. 동네 사람들은 다 거기 가.”
“아 그 계단 올라가는 신사 위에요?”
“아니아니, 공룡 공원이라고, 신사 지나서 있어.”
“무슨 공원이요?”
“공룡. 공룡 공원.”
“예?”
공룡이라는 단어를 일본어로 내뱉을 일도 없었거니와, 알아들었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갑자기 사쿠라지마에 무슨 공룡? 그 귀여운 가로등이 있던 라오스 사완나켓처럼 여기도 알고 보니 공룡의 섬이었던 것인가?
갸웃거리며 찾아보니 정말 있다. 사쿠라지마자연공룡공원桜島自然恐竜公園, 영어로 무려 Sakurajima Nature Dinosaur Park. 진짜 공룡이다. 내가 화산 못지않게 또 환장하는 게 공룡 아닌가. 사쿠라와 공룡이 뭐가 어떻게 되어 있다는 건지 전혀 짐작 가는 바는 없었지만 일단 가보기로 했다.
열심히 기웃거리며 믿음을 가지고 걸어봤더니 정말 공룡공원 표지판이 보인다. 그런데 저건..
뭐야 저 티라노. 너무 귀여운데. 어쨌든 저 나무 사이의 길이라는 거군. 찾았다는 것에 나름 뿌듯해 하며 길을 들어섰다.
할아버지가 작은 ‘산’이 어쩌고 말씀하신 건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였던 나는 이상하게 오르막이 끝나질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무보고 하늘보고 사진 찍고 하다 보니 속도가 느려 힘들지는 않았고, 그보다 정말 이런 곳에 공원이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의외로 경사지긴 했지만 엄청 크고 높은 산 같지도 않고, 저 위에 공간이 있어봤자 얼마나 있을까 싶고. 어릴 때 살던 동네 뒷산 정도, 그러니까 주민들을 위한 운동기구 몇 개를 갖다놓은 근린공원 정도려나. 가서 잠시 땀 식히고 내려오면 되겠지.
공원에 대한 기대감 없이도 기꺼이 산을 오를 수 있었던 건 눈앞에 펼쳐진 풍경 때문이었다. 바람이 불면 꽃잎이 떨어지고, 왕성하게 성장한 한여름의 초록과 다른 진한 연둣빛이 가득하고, 저 멀리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가 보이고.. 정말 전혀 지겹지 않았다.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마주친 것도 다 해서 한 너덧 명 정도? 시간대가 그런 건지 관광객이 잘 안 오는 건지 거의 나 혼자 걷는 길이었다. 이 정도라면 그저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지대가 높아지면서 점점 사야가 트이는 것 같더니 갑자기 울창해졌다. 저 곳을 지나면 왠지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부디 이 사진으로 내가 느낀 그 순간적인 감정이 전달되길 바랄 뿐이다.
예상치 못한 넓은 부지에 조성된 공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고, 서울에서 거의 본적 없는 시원한 화각이 펼쳐졌다. 들리는 건 바람소리 새소리뿐이었다.
가끔 보이는 사람들도 말 그대로 동네 주민들로 보였다. 별다른 짐 없이 가족들과 함께 나무 아래에 둘러 앉아 하나미를 즐기거나, 노부부가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정도. 아, 공룡은 도대체 뭐였냐고?
직접 와서 보니 더욱 의미를 알 수 없게 된 공룡공원. 미묘하게 표정이 살아있는 공룡들이 저렇게 듬성듬성 나타나고, 중앙의 넓은 잔디밭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기구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나름대로 신나게 근처를 뛰어다니는 꼬맹이와 아이아빠 빼고는 아무도 놀이기구에 관심을 두지 않아 시끄럽지는 않았다.
나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아니 그래봤자 공원 부지는 철조망으로 구획을 해두었으니 마의 태자 같은 표현은 그만 두자. 어쨌든 나는 거의 없다시피 한 사람들조차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차피 끝은 있겠지 싶어 계속 걸었고, 산위의 공원이라는 것이 이렇게 넓을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나무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에 주위 모든 것들이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비도 반짝거렸다. 이 모든 것을 오롯이 나 혼자 만끽하고 있었다.
철조망을 따라 걷다 보니 의미를 알 수 없는 건물이 나타났다. 이 지역의 지형과 식생의 생성 과정을 보여주는 듯한 그림이 걸려있는 것 말고는 의자와 테이블 정도가 구비된 낡고 단조로운 단층 건물이었는데, 전망대이자 휴식장소이자 대피소라는 걸 곧 알아챌 수 있었다.
건물 뒤편으로 나오니 화산이 보였다고 해서 놀랄 것은 없었다. 공원에 도착한 순간 봤기 때문이 아니라, 사쿠라지마의 어디에 있어도 화산은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도 사쿠라지마에서 꽤나 낭만적인 부분이었다. 옛 설화 속에는 우리 마을을 지켜주고 때로 벌을 내리는, 인간들의 삶을 지배하는 존재가 종종 등장하지 않던가. 그 존재는 마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그래서 항상 그 존재를 느끼고 살피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가고시마 시내에서도 보이기는 하지만 화산 바로 아래 자리한 한적한 마을에서 느끼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래도 나와 화산 사이의 인위적인 것들이 제거된 풍경을 보는 건 역시 신비로웠다. 바닥부터 천지까지 내 발로 훑었던 20여년 전 백두산에서, 베트남에서, 그리고 또 어디더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이었던가. 여튼 지대에 따라 급격하게 변하는 식생을 보는 건 자연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고 경이로운 것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엄청난 운이 따랐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청명한 하늘이 열리지 않았다면, 내가 날씨에 매우 민감하고 하늘을 유독 많이 보는 인간이 아니었다면, 바로 다음 날처럼 화산분출물이 많아져 온 섬이 흐릿해진 상황이었다면, 수많은 사람이 북적이는 시간에 왔다면, 꽃은 다 지고 여름은 아직 오지 않은 애매한 시기였다면, 츄우 할아버지의 가게에 가지 않았더라면, 할아버지께 이 공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그저 동네 뒷산 수준의 공원에 잠시 다녀왔는데 별 볼일 없었다, 이렇게 끝난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곳에 있던 수 시간 동안 나는 정말이지 너무 행복했다. 아일랜드뷰를 타고 목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전망대에 가서 본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가만히 서서 꽃비를 맞으며, 나무 사이 벤치에 앉아 저 멀리 펼쳐진 수해樹海를 바라보며, 나는 또다시 누군지도 모를 대상에게 감사했다. 아마도 이쯤에는 한국에서의 고통을 잊었던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