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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고시마 호텔 리뷰 아닌 리뷰

만물상 2018. 4. 15. 19:18

여행에 대해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내가 유일하게 심혈을 기울여 고민하고 예약해둔 것이 숙소였다(비록 출발 3일전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이건 나이와 관계가 있다. 예전에 어딘가에서 본 적 있는데 여행에서 호텔, 식사, 교통, 뭐 이런 조건 중 하나가 훌륭한 퀄리티로 무조건 제공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나, 대충 이런 질문이었다. 20대 초반이었던 내가 처음부터 고려대상에서 빼놓았던 것이 숙소였다. 아니 여행가서 호텔이 뭐가 중요해 잠만 자면 되는데. 도대체 밤에만 가는 호텔에 왜 비싼 돈을 내는 거야.

 

그러나 이제는 방 안에서 얼음이 어는 2천 원짜리 숙소에 자느니 여행 내내 마른 빵만 씹는 게 쉬운 나이가 된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게 된 세 번의 숙소에 대한 조건은 대강 이랬다. 첫 번째는 시내 중심가에서 떨어져 한적한 일상을 느낄 수 있는 곳, 두 번째는 섬 안에서 온천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 마지막은 시내 중심에서 편의를 즐기며 공항에 가기 쉬운 룸컨디션 좋은 곳. 그렇게 결정한 세 곳에 대해 써볼까 한다.

 

 

 

베스트 웨스턴 렘브란트 호텔 가고시마 Best Western Rembrandt Hotel Kagoshima

 

이 호텔에 대해 검색해봤을 때 가장 많이 본 표현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는데 해석에 좀 문제가 있었다. 나는 이 아무것도 없음을 예전에 도쿄에서 살던 곳처럼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그저 동네이고 관광할 것이 없다’의 의미로 생각해서 선택했는데 문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었다. 거기다 일본 호텔 치고 비교적 넓다는 것은 모두 더블 이상의 룸으로, 싱글룸은 여느 비즈니스 호텔처럼 좁은데다 사쿠라지마뷰가 아예 없었다. 다만 복도 베란다에서 구경할 수는 있음. 이렇게.

 

 

여기서 3박이나 하게 됐으니 첫날은 좀 암담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좋았다. 베드 테이블이었던 아날로그 냄새나는 라디오가 밤새 좋은 친구였고, 창밖으로 보이는 시내 풍경을 보며 도시를 가늠했고, 무엇보다 버스! 아마 시내 중심에 호텔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패스를 사서 전차만 타고 다녔을 것이다. 이번 여행 내내 나의 발이 되어준 버스 이야기는 나중에.

 

 

 

호텔 레인보우 사쿠라지마 Hotel Rainbow Sakurajima

 

사쿠라지마 숙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격도 싸고, ‘국민숙사’라는 개념의 느낌도 그렇고, 다다미방이고, 해서 그냥 시골 소도시 낡은 관광호텔 정도의 느낌으로 갔다. 바다 바로 앞이라고 하니 내 머릿속엔 호텔보다는 거의 해변 민박집 수준의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숙소 내부의 사진입니다. (오후 3시~6시 사이에 테이블을 밀고 이불을 깔아 줍니다.)

 

이것은 숙소에 앉아 바라봤을 때 사진입니다. (사쿠라지마뷰, 오션뷰 둘 다 숙박)

 

이것은 숙소 앞 정원과 주변 풍경입니다.

 

 

무조건 다시 가야한다.

 

정말이지 이 가격에 이렇게 넓은 방은 일본에서 처음 써봤다(침대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참고로 조식은 안 먹어봐서 모르겠고, 대욕탕은 확실히 낡았음. 면봉부터 시작해 모든 게 다 있던 다카야마와 비교하면 아무 것도 없는 수준이었지만 왜인지 이해는 갔다. 아침저녁으로 들러 잠시 몸을 풀고 가는 동네 사람들은 각자 물건을 챙겨오고, 외국인 관광객 대부분은 중국인이다.

 

 

 

솔라리아 니시테츠 호텔 가고시마 Solaria Nishitetsu Hotel Kagoshima

 

완벽한 위치 선정, 그에 따른 조금 높은 가격대, 좁은 방, 그에 비해 넓은 욕실, 다 알려진 그대로였는데 확실히 용도는 비즈니스였다. 제대로 스탠드가 있는, 책상이라고 해도 무방한 테이블이 그랬고 무엇보다 그 좁은 공간에 바지를 펴기 위한 스팀 기계가 있었다. 슈즈 폴리셔는 여기만 있는 건 아니지만 구두를 넣어 둘 수 있는 칸을 만든 자체도 그랬고. 어쨌든 방은 매우 좁아서 기내용 가방이 아니면 펼쳐놓기 어려울 정도였다. 조식은 나쁘진 않았는데 경비를 절약하고자 하는 사람한테는 가격대비 불만일수도. 그래도 아침마다 보는 하늘은 좋았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숙소가 중요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어차피 별 준비없이 떠난 여행, 그저 글이나 쓰고 멍이나 때리고자 했기 때문이었다(물론 두달간 때린 멍을 또 때려야 하나 조금 고민은 되었다). 그래서 노트북은 물론 평소 읽고 싶었던 책과 필기용 노트, 스케치용 노트, 여러 외장하드... 혼자 놀이에 적합한 것들을 이고 지고 떠났다. 하지만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기엔 눈에 담고 싶은 너무나 많은 것들이 가고시마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