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mad/'14 Japan

[일본] Story: 사쿠라, 세 번째 일본

만물상 2014. 4. 3. 23:04



 에라 모르겠다. 그런 기분이었다. 항상 이런 저런 핑계에 눈치에 미뤄두는 것도 지쳤고, 생각해보니 무려 5년 만이라는 것도 스스로를 부채질했다. 무엇보다 나름 중차대한 결정을 앞두고 여유를 부리고 싶었다. 선택의 기로에 서서 빠개지기 직전인 머리도 식히고, 더 이상의 의문이 남지 않는 깔끔한 결단을 내려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그래서 갔다.  



 3주 전에 비행기 예약만 덜렁 해놓고 늑장 부리다 결국 출발 일주일 앞두고 숙소가 없는 사태 발생. 한창 사쿠라 꽃놀이에 봄방학 시즌이라는 걸 몰랐다. 그렇다고 하루에 몇 십만 원짜리 방에 묵을 순 없는 일이었다. 나누어 예약을 하는 건 가능했지만, 4박5일의 짧은 일정을 쪼개어 짐을 쌌다 풀었다 하며 이동하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SOS 끝에 아는 일본분이 뒤지고 뒤져 구해준 숙소가 요코하마의 맨션. 그렇게 의도와 상관없이 나의 베이스캠프는 요코하마로 결정되었다. 



 처음 일본에 갔을 때의 상황이 반복되었다. 예정대로라면 느긋함을 즐기다 출발해야 했건만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이 몰려들었다. 며칠을 무리한 끝에 마지막 날은 작업으로 밤을 새다시피 하고 몸살 기운을 안고 출발. 첫날은 가는지 뭔지 실감도 안 나고, 그냥 몽롱한 상태로 돌아다니다 기절하듯 뻗었다. 이후 내내 열이 올라 시뻘개진 얼굴로 돌아다니다 밤에 기절하길 반복. 결국 이 몸살은 한국으로 도로 가져왔다. 하네다에서부터 흐려지는 정신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겨우 돌아와 이틀을 꼬박 앓았다. 아프지 않았음 좀 더 정신차리고 즐겼을텐데. 나이가 나이다. 건강이 제일 중요. 그리고 출발 전날 절대 밤새지 않겠다고 다짐. (맘대로 되겠냐마는)



 코딱지만한 주제에 호텔 가격과 맞먹는 게 께름칙했지만 결과적으로 맨션이라 좋았다. 방을 정리하며,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며, 잠시 5년 전 도쿄의 일상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난 역시 도쿄라는 도시를 여행하는 것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모양이다. 물론 예전부터 로컬 분위기를 좋아했지만 베트남 이후 명확해진 느낌. 사람이 많거나 관광지로 특화된 곳이 전혀 끌리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처음 왔을 때도 그랬다. 당시 도쿄에 있던 지인은 날 보자마자 넌 놀러 온 게 아니라 여기 사는 사람 같다고 했었지. 아무도 날 여행자로 보지 않았다. 도쿄니까, 도시니까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난 처음부터 이곳에 여행자로 서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매일 아침 뉴스부터 사쿠라 사쿠라. 천엔 지폐에 숨어 있는 사쿠라, 100엔 동전에 숨어 있는 사쿠라, 일기예보는 사쿠라 예보와 다름없고 하나미(花見, 꽃놀이)로 유명한 곳의 리포트가 빠지지 않는다. 사쿠라를 테마로 한 장식품이니 문구류니 기간한정 상품들도 쏟아져 나온다. 우에노 공원의 판다를 테마로 사쿠라판다짱 캐릭터가 나왔다는 뉴스에는 실소를 금치 못했지만, 윤중로도 안 가는 나조차 아무래도 일본에 있으니 신경쓰이는 게 사실이었다. 



 이 시기의 도쿄가 추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한국보다 한참 밑이 아니던가? 겨울과 다름없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대니 얇은 봄옷 말고는 걸칠 게 없는 내 상태가 나아질 리 없었다. 하루노아라시(春の嵐, 직역하면 봄의 폭풍우)의 존재도 처음 경험했다. 도쿄의 일본분의 설명에 따르면, 사쿠라는 하루노아라시가 지나고 날이 확 풀리면 일시에 만개했다가 다시 하루노아라시가 불어왔을 때 순식간에 우수수 떨어진다고 한다. 하필 어디 몸을 숨길 곳도 없는 긴자의 빌딩거리에서 만난 하루노아라시는 태풍처럼 비바람을 몰아치며 내 몸을 적시고 우산을 부러뜨리고 한마디로 날 물에 빠진 생쥐꼴로 만들었다. 



 마치 바닷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끝없이 높고 넓은 대형수조가 있는 수족관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도쿄 최대라는 카사이린카이수족관에 갔는데 예상했던 높고 거대한 수조는 없었고, 좀 낡았고, 하필 주말이라 사람이 엄청 많았다. 작은 수조는 그 안의 생물들이 왠지 불쌍해져서 덧없었다. 100마리의 마구로는 너무 빠르고 거대해서 더 불쌍했다. 갇혀 있는 건 역시 별로라는 걸 깨달았다. 형형색색 빛나는 해파리를 볼 수 있었다는 건 좀 다행스러운 일. 무아지경으로 빠져 들었다. 계획했던 걸 했다고 해서, 염원했던 걸 이뤘다고 해서 꼭 큰 만족감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직접 가서 확인했다는 자체가 또 다른 의미로 좋았다. 미뤄두거나 담아두는 건 이제 사절이니까. 결과물이 어떻든 상관없이 내 눈으로 확인했다는 건, 그래서 후회가 없다는 건 꽤 의미있었다.



 의외로 좋았던 건 가마쿠라. 대학 때 가마쿠라에서 자취를 했던 일본 지인의 안내로 최대한 관광객을 피해 다닐 수 있었다. 그 유명한 에노덴은 타지 않았지만 키타가마쿠라부터 시작해 오로지 내 발로 걸으며 가마쿠라의 구석구석을 훑었다. 남들과 반대 방향으로 시작한 트래킹은 바닷가 마을의 산이 높아봤자지 했던 나를 비웃듯 예상 외로 정말 산길이었는데 이번 여정 통틀어 가장 좋았던 기억. 딱 기분 좋을 정도의 가쁜 숨, 불어오는 바람, 끊이지 않는 새소리, 나무에 스민 봄의 기운,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걷는 길의 즐거움, 대체 어떻게 이런 곳에 지었을까 싶은 곳곳의 예쁜 집들, 산 위의 신사 앞에 펼쳐진 작은 공원에서 먹는 소박한 점심,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본 가마쿠라와 저 너머 바다의 전경, 내려와서 본 정제되지 않은 바닷가의 짜고 비릿한 바다 향기, 할아버지 네 분이 열띤 토론을 벌이는 클래식한 킷사텐(喫茶店, 카페보다 좀 낡은 느낌의 단어. 우리의 다방 정도 되려나). 모든 게 완벽했다. 바닷가에서 지인이 먹던 빵을 저공비행으로 날아와 낚아채 간 솔개까지. 참고로 가마쿠라 이곳 저곳에 있는 절과 신사 중 제니아라이벤자이텐(銭荒い弁財天)이 좀 재밌고 켄쵸오지(建長寺)가 고즈넉하니 보는 맛이 있다. 특히 제니아라이는 가마쿠라 특징인 키리토오시(切り通し, 잘라서 통과한다는 뜻으로 산을 거의 수직으로 잘라 길을 내는 방식)를 느낄 수 있는 곳.



 사실 오는 게 중요했고 떠나는 게 필요했다. 그 이상은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익숙한 곳에서, 그것도 과거를 더욱 붙잡게 되는 곳에서, 그 과거가 지금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곳에서 현재와 미래를 해결할 수는 없었던 거다. 요코하마 붙박이로 있다가 도쿄에 가면 자꾸 과거의 흔적을 찾아가곤 했다. 있는 곳을 즐기지 못하고 돌아갈 곳에 대한 무게감으로 허우적대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마음의 짐을 가지고 온 여행은 이래서 안 되는 거라고, 뒤늦게야 깨달았다.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머릿속이 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익숙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훌쩍 떠나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할 뿐이다. 



 그래도 언제나처럼 느낀 건 있었다. 좋다, 라는 것. 단순하지만 그 이상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저 좋은 기분. 가마쿠라의 산을 오르며, 바다내음을 맡으며, 내 눈에 담기는 풍경과 그 안에 서 있는 나 자체가 만족스러운 기분. 이거면 된 건지도 모르겠다.



 결정은 하지 못했지만 들고 간 책의 한 구절을 보고 어렴풋이 감은 잡았다. 인생, 별거 아니라는 것. 선택의 뒤는 아무도 모르고, 나머지 하나를 선택하지 않았다 해서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그건 결과를 보고 그려내는 거고, 결국은 나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 무엇보다 난 선택의 결과에 매달릴 만큼 인생에 매달리는 타입이 아니니까. 어쨌든 굴러가는 인생이다. 10대 중후반 때의 나로 돌아가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 발자국 떨어져 내가 내 모습을 구경하듯 살았던, 나 스스로를 타인으로 만들어 바깥의 시선으로 보고 살았던, 그때의 내가 필요한 때인지도 모른다.



 이 시기 일본인들이 온통 마음을 빼앗기는 사쿠라는 하루노아라시가 지나간 다음 날, 여행의 마지막 날에 와서 결국 활짝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