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mad/'11 Turkey

[터키] 15. 아직은 끝이 아니다

만물상 2014. 1. 26. 13:50

돌아온 이스탄불에서 날 기다린 건 빌어먹을 추위였다. 설상가상으로 찌뿌둥한 하늘에서는 차가운 빗줄기가 내리고 있었다. 야간버스에서 뻐근해진 몸을 이끌고 내린 지 0.1초 만에 따뜻한 셀축으로 되돌아가고 싶어졌다. 


날씨가 아니더라도 여러 면에서 가시지 않은 셀축의 여운이 날 힘들게 했다. 처음 이스탄불에 도착했을 때는 몰랐는데 역시 도시는 차갑고, 비싸고, 불친절하고, 냉정한 곳이었다. 여유로운 셀축의 풍경과 더불어 혼자인 날 외롭지 않게 해주었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단단히 셀축병이 든 내게 이스탄불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았다. 


풍문으로 들었던 숙소 몇 군데를 둘러봤지만 예상보다 비싸서 결국 다시 동양호텔로 향해야 했다. 이른 아침부터 무거운 배낭 매고 방을 알아보는 내게 호메로스 여주인장처럼 따뜻하게 다가와주는 숙소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잔뜩 지쳐서 들어온 동양호텔 역시 체크인 시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 맞고 추위에 떠는 날 버려뒀고, 내 발로 차버리고 온 어제까지의 따뜻함을 떠올리며 난 거의 울 지경이 되었다. 이게 뭐야. 괜히 왔어. 메멧과의 약속도 팽개치고 아크난의 제안도 뿌리치고 대체 왜 돌아온 거야. 


혼자라 좋았던 여행이 혼자라 외로운 여행으로 변하다니. 이럴 순 없었다. 여기는 그토록 오고 싶던 터키 아닌가. 거기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어서 빨리 우울함을 떨쳐버리고 여행자의 기분을 최고치로 올려야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배고프면 더 외로운 법. 눈에 띄는 케밥 가게로 들어갔다. 옆 사람 테이블을 대충 눈으로 훑고 적당한 걸 시켰다. 대로변에 있는 야외테이블에 앉아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이스탄불의 슈샤인보이를 보게 될 줄이야. 생업전선에 뛰어든 소년을 보고 할 말은 아니지만 그 정겨움에 조금 감동했다. 내 신발이 구두가 아니라 아쉬운 한편, 내가 보고 싶었던 건 그저 사람들의 모습이었음을 조금 기억해냈다.


음식을 가져다 주고 이것 저것 살뜰하게 챙겨주던 웨이터가 결국은 말을 건다. 나랑 대화해보고 싶단다. 청년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린 이 귀여운 녀석을 보며 마음은 좀 더 풀렸다. 그래, 터키 사람이 거기만 좋겠나. 




무작정 걷다가 도착한 이스탄불 대학의 벤치에 앉아 유학생 흉내를 내던 참이었다. 차 파는 아저씨가 맞은 편에 앉는다. 보온병과 컵 뭉치를 내려 놓고는 차 한 잔 드시며 한숨 돌리신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돈을 버시는 아저씨 앞에서 조금 숙연해지는 여행자. 문득 공항에 도착했을 때가 생각났다. 이제 눈길 닿는 곳에 중동 사람들만 보이는 것에 익숙해졌구나. 그렇게 한동안 반대편에서 서로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바자르’라는 이름이 주는 우아함이 당겨서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그랜드 바자르에 들어선 지 1분 만에 후회가 밀려왔다. 하기야 내가 원했던 바자르의 모습은 어디 시리아나 예멘 구석탱이 도시에나 가야 볼 수 있을 것이다. 눈이 닿는 곳마다 사는 자와 파는 자가 대치 중이고 미터당 한 명씩 호객 중이다. 단체로 온 한국 어르신들도 곳곳에서 흥정을 하고 있지만,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그들과 싸우기엔 역부족이다. 외교관 뺨치는 외국어 실력을 가진 상인들은 너무나 노련하고, 어설픈 할인기술 따위 먹히지도 않는다. 


순식간에 피로가 몰려와 나갈 구멍을 찾던 그때 이 할아버지를 만났다. 만났다기보다 그냥 본 것이다만. 다른 곳들은 각자 가게의 형태로 영업 중인데 할아버지는 바자르 한 켠에 벽에 붙어 노점상처럼 물건을 늘어놓았다. 거기다 오마 샤리프 옆자리에 앉아 담배를 태울듯한 저 외모하며, 사진에는 안보여도 무려 알라딘 의상(무식한 명칭이라 미안하다)을 입으셨다! 관광객을 위해 억지로 입은 게 아니라 수십 여 년 착용하신 평상복이 분명한 자태로! 


할아버지 좌판엔 없는 게 없었다. 벽에 거는 코란에, 이블아이에, 싸구려 큐빅 팔찌와 캡틴플래닛이 낄 듯한 보석반지, 동전지갑.. 구멍가게에서 부자된 느낌. 원체 오래 고르느라 할아버지 하는 걸 유심히 봤는데 이 할아버지 영어를 못하신다. 호감도 업. 딱히 흥정도 없고, 미소도 없고, 근데 불친절하진 않고, 어찌나 바지런하신지 한시도 쉬질 않으신다. 왕창 골랐더니 쓱쓱 펜으로 숫자로 썼다가 박박 지우고 밑에 할인가격을 써서 내미신다. 나도 군말없이 오케이. 하지 않고, 조그만 거 하나 서비스로 달라고 챙겨 넣었더니 그러란다. 쏘쿨이다. 


바글거리는 다른 가게와 달리 손님이 몇 명 오기도 하고 아무도 없기도 하고. 쇼핑지옥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할아버지 곁에 빌붙어 숨 좀 쉬었다. 여기서 힘을 얻어 스카프 가게에 가서 엄마와 돌고래를 위한 실크스카프를 하나씩 샀는데 처음 부른 가격의 4분의 1로 깎는 쾌거를 이룩. 나한테 한 방 맞았던, 이태리 명품 브랜드 매장 책임자처럼 굴던 그 상인의 썩소를 잊을 수가 없네.. 그래도 남는 장사한 거 다 알거든요. 




시내를 걷다가 우연히 가죽 벨트 가게를 발견했다. 터키 가죽제품이 좋다는 얘기를 주워 들은 지라 종목선정이 애매했던 아빠 선물을 사기로 하고 들어섰다. 그리고 만난 이 주인 아저씨. 영어를 전혀 못한다. 어디서나 영어면 다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대주의는 나도 싫지만 여긴 이스탄불 아닌가. 어디 동남아 깡촌도 아니고, 주구장창 인유럽을 원하는 국가의 수도다 보니 기초영어를 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가격 때문에 얘기하다 바로 알았지만 아저씨는 아예 원투쓰리 숫자도 모르시는 상태. 거기다 어찌나 수줍어하시는지!!! 외국관광객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아저씨를 보며 천혜의 비경을 본 오지탐험가의 기분이 이런 걸까 생각했다. 말은 전혀 안 통하는데 친절하기론 5성급 호텔 매니저 수준이다. 거기다 이런 매력.

전화를 받으시는 아저씨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카메라에 손이 갔다. 내 눈에 보이는 저것이... 아 통화가 아니신가. 무전을 하시는 건가.....? 


소품마저 완벽하신 아저씨의 도움 아래 수백 수 천 개는 됨직한 벨트들 사이에서 적당한 걸 고르고(가격이 일괄이라 흥정할 필요도 없었다) 사진을 요청했다. 처음엔 그냥 풍채 좋은 아저씨로 보였겠지만 다시 보면 온 몸을 흐르는 긴장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저 손도 어찌할 지를 몰라서 접었다 폈다 하는 걸 그냥 오케이 하고 냅다 찍었다. 




역시나 걷고 걷다가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게 될 무렵 뭔가 예쁜 입구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그렇게 가게 된 헌책방 거리. 가이드북에서 언뜻 봤는데 이렇게 얻어걸릴 줄은 몰랐다. 사실 애들용 그림책이나 영어 교재, 사전류도 많아서 운치있고 고즈넉한 서점가라기엔 2프로 부족함이 있지만.. 어쨌든 같은 패턴으로 나가자면 여기서도 만났다. 이 사람을.


저 자연스러운 포즈를 보라. 부드럽고 강약있는 영국식 영어, 해박한 지식, 젠틀한 매너에 더불어 작고 아늑한 책방의 젊은 주인이라니. 실상은 모르겠지만 겉보기엔 너무 부러운 프로필이다. 검정색 롱코트 덕분에 어떻게 보면 옥스포드 대학원생 같기도, 또 어떻게 보면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젊은 강사처럼 보이기도 했다. 


기웃거리다 눈이 마주친 내게 인사해올 때부터 느낌이 좋았는데 역시나였다. 몇 마디 나누다보니 이 여행 초반부터 유지했다가 잠시 정지했던 말 걸기에 시동이 걸렸다. 그야말로 나 중동 사람이오 얼굴로 외치는 사람들과 전혀 다른 외모에 혹시 고향이 어디냐 했더니, 여러 인종과 민족이 짬뽕된 터키의 특수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간만에 말 통하는 사람을 만나 신나게 떠들다 문득 생각나 사진을 보여줬다. 

터키 도착한 지 이튿날. 이때 사진이 좀 있는데, 시위대보단 얼마 안 되는 시위대를 향해 도열한 엄청난 경찰들의 모습에 좀 놀랐다. 대한문에서 보는 전경 떼와 비슷한가 했는데 소총까지 들고 있다. 이건 도촬했다간 도저히 방법이 없을 것 같아 같이 있던 L양을 앞에 세우고 찍어주는 척 하면서 L양을 날리고 뒤에 초점을 맞췄는데 간떨려서 혼났다.


어쨌든 옆에 무스타파 케말과 레닌 얼굴이 큼지막하게 박힌 현수막도 있고 이래 저래 궁금해서 찍어뒀는데 그 동안 물어볼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보자마자 알메니안 홀로코스트(이 사람의 표현대로 쓴 것이다. 제노사이드와의 표현의 차이는 알아서..) 때문이라는데 알메니안 홀로코스트에 대한 나의 무식과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완벽하게 알아듣지는 못했다. 다만 뉴욕에서 봤던 코소보 독립선언 퍼레이드가 기억나면서, 내가 공부해야 할 상식 목록에 조용히 하나 더 추가했다.


사실 여기서 책을 사고 싶기는 했다. 책방 한 켠에 그야말로 백 년은 우습게 넘기는 고서적들이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제본양식이나 장정만으로도 혹해서 살 뻔 했지만 언어의 장벽이 내 이성을 붙들었다. 아무리 보기 좋아도 읽지 못하는 책이 큰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영어 고어여도 못 읽을 판에 왠 불어냔...... 한바탕 수다도 떤 판에 뭐 하나 안 사자니 좀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사고는 싶은데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별로 권하지도 않고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괜찮다며 친절하게 배웅해주는 이 사람을 어찌 찍어두지 않을 수 있을까. 




뒤늦게 돌아온 숙소에서는 또다시 맥주판이 벌어졌다. 한국인들끼리 모이니 어쩔 수 없나 보다. 서로의 트래블메이트를 자처하며 말 한 마디 한 마디 웃음이 끊이지 않는 여성 두 분, 3개월 간의 중동 여행을 마치고 세계여행 중인 청년, 데니즐리로 봉사활동을 가는 학생, 아프리카를 7개월 간 여행한 토론토 출신의 교포. 길 위의 만남이라 이름도 모르고 헤어졌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축 처져서 페이스북만 들여다볼 때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