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mad/'03 China

[중국] 4. 취푸의 매력, 두번째 사기를 당하다

만물상 2010. 3. 14. 00:38

방이 추워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니 뼈마디가 쑤신다. 카이슈웨이를 섞어 씻는데 문득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이런 게 여행이지 싶었고, 중국인들이 왜 잘 안 씻는지도 알았다.

 



 

산둥성에 위치한 취푸는 공자의 탄생지이자 무덤이 있는 곳으로 그 나름대로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한국에 와서 여행에 대해 얘기했을 때 취푸라는 지명을 알고 있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이곳을 어떻게 알고 여행하기로 정했는지는 나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직까지 기차역이 들어오지 않은 작은 도시 취푸. 다른 큰 도시에 비해 별볼일 없을 수도 있지만 내게는 배낭여행의 첫 도시였기 때문에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준비를 하고 나와보니 길에 머리감은 사람이 별로 없고 옷차림도 7~80년대 모습같다. 아가씨들도 바알간 볼에 어색한 화장을 했다. 아기들은 누비옷같은 걸로 온몸을 둘러싸고 있고, 노인들은 문화혁명 시절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다.

 

아마 대도시만 여행했으면 몰랐을 텐데, 칭따오에서 옌저우까지 오는 열차 안에서도 대부분 이런 사람들 뿐이었다. 머리도 헝클어져 있고 마음먹고 꺼내 입은듯한 정장도 꼬깃꼬깃하고 촌스러운 사람들. 여행 루트가 취푸, 타이안, 난징, 샹하이 순으로 점점 대도시로 나가는 형태였는데 도시가 하나씩 커질 때마다 사람들의 모습이 단계별로 달라지는 게 보였다. 취푸에서는 아, 아직도 중국 사람들이 이렇게 생활하는구나 했었는데 샹하이에 가서는 정말 같은 나라가 맞는 건지 헷갈렸다.

 

사실 취푸의 아침은 조금 두려웠다. 오직 실용성만을 강조한 나의 옷차림은 한국에서라면 절대 시내에 입고 외출하지 못할 것이었으나, 이곳에서는 어떻게 이 옷을 보고도 외국인이라고 알아차린 건지 엄청난 리어카 삐끼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리어카는 일종의 인력거인데, 다만 인력거꾼 뒤가 아니라 앞에 타서 온갖 먼지를 다 마시고 사람들의 눈요깃거리가 되는 것을 말한다. -_- 사진한장 찍어왔으면 좋았으련만 끈질긴 리어카꾼들이 무서워서 피해다니기 바빴다.

 

취푸에서는 철저한 중국식 아침을 먹었는데 굳이 중국대륙을 느끼기 위한 것은 아니고 달리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게 앞에 늘어서있는 음식 중 손가락으로 고르기만 하면 갖다주는데 곡식으로 만든 밍밍한 죽과 각종 짠지, 삶은 계란 혹은 계란빵, 기름에 튀긴 꽈배기 비슷한 것을 주로 먹는다. 정말 맛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너무너무 싼 값에 비해 배는 든든해지는 고마운 음식들이었다. 취푸에 머무는 동안 아침식사를 했던, 좁쌀죽이 맛있었던 식당을 소개한다.

 

 



정작 좁쌀죽 사진은 없네... 여튼 저 꼬마아가씨는 처음엔 주인 아저씨 딸인 줄 알았는데 단순히 일하는 아가씨일 뿐이었다. 말도 별로 없고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만 하면서도 외국인이 자기네 식당에서 밥먹는 게 신기했던지 계속 호기심어린 눈길을 보내는 것이 느껴졌다. 말 한번 붙여 볼 것을. 사진을 볼 때마다 조금 후회된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구경을 나섰다. 일단 가장 먼 쿵린을 가야한다. 삐끼들이 정신없이 들러붙었는데, 사실 인력거가 비싼 건 아니지만 우리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을 찾았다. 역시 걷고 걸어서 정류장을 발견했는데 1번 버스가 가는 모양이다. 버스를 타려는 우리에게 종국엔 성질까지 내던 삐끼아저씨는, 그래도 쿵린가는 버스가 오자 저거 타라고 일러준다. 착한 시골사람이다.

 

정말 여행하면서, 특히 소도시에서는 택시같은거 말고 시내버스 타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찌나 재밌는지 모른다. 코끼리버스처럼 작은 버스를 일단 탔는데 완전 동물원 원숭이 꼴이다. 다들 '대체 이 외국인들이 이런 버스를 왜 탔을까?' 하는 표정이다. 돈을 꺼내 차장언니에게 요금을 내는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본다.

 

 

쿵린은 서울의 웬만한 공원 몇개를 합쳐놓은 듯한 엄청난 부지에 만들어진 공씨가문의 묘가 모인 곳이다. 워낙 넓다보니 묘는 띄엄띄엄 보이고 하나의 큰 공원이자 숲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도가도 끝없이 무덤인 쿵린이 별볼일 없다고 하지만, 고개만 살짝 들어도 현대건물들이 보이는 서울의 관광지들과 달리 정말 사방이 조용하고 담벼락이 안 보일 정도로 넓은 곳을 느긋하게 거니는 것도 괜찮았다. 부옇게 내려앉은 안개인지 찬 대륙의 증거인지 모를 기운이 가득한 가운데 아직까지 남은 낙엽을 밟아 나가는 길이 좋았다.

 

  

 


쿵린을 나와 쿵푸까지 마차를 타기로 했다. 덜컹덜컹 흔들흔들, 생생히 들리는 '따각따각' 소리가 참 재밌다. 하지만 마차타기 역시 단조롭지는 않았다. 아저씨가 갑자기 말꼬리를 들어 올리시길래 뭔가 했더니, 글쎄 이 말녀석이 보기에도 엄청난 양의 일을 보는게 아닌가? 걸으면서 일을 보다니... 그대로 길에 떨어진 줄 알았는데 나중에 내려서보니 말 엉덩이 아래에 푸대자루 같은게 설치되어 있다. 이를테면 똥주머니다. 말이 일을 보자 아저씨가 민망한 듯 웃으시는데 우린 그저 재밌어서 깔깔댔다.

 



 

쿵푸는 가이드북이나 이런저런 얘기들을 들어보면 아무래도 3대관광지이니 만큼 조용하긴 힘든 곳인데, 비수기인데다가 우리가 간 시간대가 그랬는지 꽤나 한적했다. 고요함 속에서 말그대로 미풍이 이마를 스치는 가운데 전통 중국식 건물에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잠깐씩 보이던 관광객들도 자취를 감춘 조용한 쿵푸 안. 돌로 쌓아진 문턱에 앉아 중국식 정원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었다. 중국 땅을 밟고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는 흥분도 갑자기 밀려왔던 것 같고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기도 했던 것 같다. 내 운명같은 역마살의 끝을 상상하기도 했다.

 




쿵먀오는 공자의 사당으로 중국 3대 건축물 중 하나라고 한다. 규모도 넓고 대성전도 대단하지만 뭣보다 기묘하게 자란 거대한 나무들이 볼만하다. 관광지답게 장사꾼도 많고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45위안이나 하는 입장료를 내국인이라고 안내는 것도 아닐 텐데, 그저 동네 구경하듯 하릴없이 가만히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지금 생각하니 의심스럽다. 내국인은 안 내는 건가!).


 



숙소에서 쉬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 나왔는데 왠지 심상치가 않다.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다들 저녁 먹으러 나온 건가? 사람들에 휩쓸려 시장까지 밀려오니 시장 안은 제대로 걷기도 힘들다. 날이 어두워지자 하나둘 불을 밝히고 잡다한 것들을 판다. 곳곳에서 볶아대는 요리냄새에 고픈 배를 붙잡고 가게를 물색하는데, 한 아줌마가 밥 먹고 가라고 붙잡는다. 못 이긴 척 서서 좌판에 가득 쌓인 재료들을 봤다. 자, 이제 어떡해야 하나?


 


 

아줌마가 초짜인 우리들을 알아봤는지 이것저것 냄새도 맡게 하고 설명도 해준다. 그래봤자 우리가 뭘 아나. 안전을 기하느라 계란, 새우 등 아는 것만 골랐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으니, 먹기 전에 가격을 물어보지 않은 것이다.

 

요리는 생각보다 많았다. 고른 재료를 야채와 섞어 볶아주는데 짜긴 했지만 밥과 먹으니 그나마 나았다. 주인 아저씨는 찍사를 자청해서 사진도 찍어주고, 아줌마는 혹시 맥주 한잔 하겠냐고 물어본다. 이런 친절을 과연 어떻게 의심할 수 있었을까.

 




말하기도 창피하지만, 우리가 준 식사 값은 65위안이었다. 65위안이라니, 65위안이라니! 아무리 간단한 죽과 빵이라도 아침 한 끼에 2위안도 안 썼는데! 처음엔 잘못 알아들은 줄 알고 손가락으로 표시했더니(중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숫자표현법이 있다) 65위안이 맞단다. 기가 막혔다. 막 따졌어야 되는데, 더 억울한 것은 고스란히 돈을 내어준 것이다. 여행 첫 도시라 완전 초짜였던 탓도 있고 어쨌든 음식은 뱃속에 있으니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거다. 아줌마 얼굴이 백 살 먹은 마녀로 보였다. 100위안짜리를 내어주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더 웃긴 사태가 벌어졌다. 아줌마가 거슬러 줄 돈도 없는 거다. 100위안짜리를 만져본 적은 있을까? 여기서 100위안짜리 밖에 없다고 뻗댔어야 했는데, 우리는 65위안을 따로 챙겨주고 말았다. 진짜 바보등신이다. 나중에 샹하이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갔다가 정말 65위안을 부른 아줌마도 배짱이 대단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 65위안.

 


아줌마가 말해줬지만 사람이 많은 건 대보름이기 때문이었다(밤늦게까지 볼 게 많을테니 이것저것 구경하라고 일러줬었다. 흥). 사람들은 밤이 될 수록 더더욱 모여든다. 곳곳에 폭죽소리도 요란하다. 큰 중심가로 나가니 이미 차도는 차단됐고 엄청난 인파가 가득하다. 대체 취푸 어디에 이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불꽃놀이는 거의 두세 시간이나 이어졌다. 절정이 되자 사방에서 터지는 불꽃놀이와 중국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따다다닥 하고 터지는 폭죽이 기관총소리처럼 이어진다. 공자 형상을 태운 가마행렬이 지나가고, 부리부리한 용과 사자탈도 지나간다. 왠 소방차가 길에 나와 있는데 그 위에도 사람이 한 가득이다. 아이들도 신났고, 옴짝달싹 할 수 없는 거리지만 꼬치 장수들은 좌판을 끌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잘도 돌아다닌다.

 

 

 

 

밤 10시가 되어도 축제의 여파가 남아 사람들이 이곳저곳을 배회하고 있었다. 노래판이 벌어진 곳도 있고, 다들 즐거운 밤을 즐기고 있었다. 타박타박 숙소까지 걸으며 아직도 터지는 폭죽 소리를 즐겼다. 숙소에 돌아오니 종일 걸어서 몸이 천근만근이다. 손님이 들어오는지 나가는지 신경도 안 쓰는 주인처녀가 어이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