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mad/'03 China

[중국] 1. 그 시작은 창대하지만 끝은 미묘하리라

만물상 2010. 3. 14. 00:27

2003년 2월.

뜨겁게 타올랐던 2002년의 열기는 사그라든지 오래였다. 새로운 해의 시작을 알리며 근거없는 기대감을 주는 1월과 봄을 맞이하는 기운으로 들뜨게 하는 3월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낑긴 2월에게 주어진 것은 늘 그랬듯이 매서운 추위와 한달만에 무너진 신년계획에 대한 저주였다.


조금은 지루하고 조금은 심란했던 그 무렵 나와 돌고래는 배낭을 꾸렸다. 사실 당시 우리는 여행하기에 극악인 조건 두 가지를 갖추고 있었다. 첫째, 돈이 없다는 것. 둘째, 시간도 없다는 것. 하지만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시간이 없으면 쓸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즐기며 하는 것이 여행 아니던가?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돈 없고 시간 없는 주제에도 떠나겠다고 설쳐대는 열정이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우리가 가진 돈으로 여행할 수 있는 곳은 가깝고 체류비가 싼 중국과 동남아로 좁혀질 수 밖에 없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배낭여행에 대한 긴장감이 컸던 우리는 초보적인 수준이나마 언어소통이 가능하고 둘 다 다녀온 경험이 있는 중국 쪽에 한표를 주게 되었다.

 

머리를 맞대고 짠 루트는 칭따오에서 취푸, 타이안, 난징을 거쳐 샹하이까지 내려오는 코스. 비용절감을 위해 인천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기로 했다. 그러고보면 이런 것도 여행의 묘미다. 한국에서도 해보지 못한 일들을 여행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한강 유람선은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서 러시아에서는 모스크바강, 네바강 유람선을 제대로 탔었다. 땅덩어리 넓은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밤새 열차를 타고 이동한 것도 부산까지 2시간만에 가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기에 더욱 즐거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기회가 없었던 1박2일간의 선상여행 역시 여행 덕택에 하게 됐다.

 

여행 준비는 착착 진행되어 갔다. 여행물품을 구입하고 환전을 하고, 기간은 짧아도 해외여행인지라 싼 보험 하나도 들어 두었다. 시간이 촉박해서 비자는 선상비자를 받기로 하고 마트에 들러 부식쇼핑까지 했다(그때 산 라면이 어찌나 요긴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우리의 준비태세는 거의 오지여행가의 그것에 못지 않았고, 계획은 또 어찌나 철저하게 짰는지 여행사 직원들도 혀를 내두를 수준이었다. 배낭여행 가면서, 그것도 변수가 무궁무진한 중국으로 가면서 시간 단위로 일정표를 만들고 예상 비용을 계산해뒀으니 여행초보자의 불안과 초조가 극도에 달했던 시기라 할 수 있겠다.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거창한 목적은 없었고 그냥 떠나는 자체가 중요했다. 우리에게 첫 배낭여행이란, 교실 창가에서 저 멀리 상공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를 보며 훗날 우리가 갈 곳들에 대해 상상하고 즐거워했던 열여섯 시절에 대한 예의와도 같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둘 다 해외가 처음이 아니었고 비행기가 아닌 배를 타고 갔지만. 그래도 우리가 생각하는 '여행'의 기준에 부합하는 첫 발걸음이었고 어쨌거나 줄곧 함께 꿈을 꿔왔으니 같이 떠난다는 자체가 무엇보다 큰 의미였다.

그랬다. 우리는 드디어 그 출발선상에 있었다.





난 몰라... 뉴욕도 도쿄도 안 끝내고 또 시작이다. 어쩌겠나. 지금은 이 여행이 땡기는 것을.

첫 줄부터 나와있듯이 7년 전의 기억이다. 꼼꼼히 해둔 기록 덕에 틀린 내용은 없지만 최근 여행에 참고하기엔 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