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걷지 마 뛰지 마 날아오를 거야
지난 달 어느 날, 인터넷 서점에서 택배가 왔다. 마침 주문해놓은 책이 있어서 그 책이겠거니 하고 별 생각없이 뜯었더니 전혀 다른 책이다. 이게 뭐지. 나 어디 이벤트 당첨됐나. 발신인을 다시 보니 주문자가 돌고래다. 아, 돌고래였구나. 녀석이 일부러 보낸 책이라면 필시 가볍지 않은 이유가 있을 터였고, 그 이유는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알 수 있었다.
나와 저자는 너무나 다르다. 흔히들 부러워하는 길을 착실히 가다가 어느 날 각성한 저자와 진작 각성해서 흔히들 부러워하지 않는 길을 걸어온 내가 같을 수가 있겠는가. 사실 나보다는 돌고래에게 더 충격적이었을 거다. 소위 말하는 '괜찮은 스펙'을 갖추고도 호시탐탐 어긋날 기회를 노리는 돌고래에게 가슴 시원한 충격이자 뒤통수를 때리는 신선함이었겠지. 내게 주어진 충격에 대해 말하자면, 나이 많은 외국남자와의 연애나 현대판 노마드의 삶을 선택했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다름 아닌 저자와 저자 엄마와의 이야기였다.
우리 엄마는 나랑 상극이다. 사이가 나쁜 건 절대 아니다. 글로 쓰자니 표현이 좀 난감하지만 어쨌든 조용, 안정, 평범 등의 단어가 어울리는 엄마는 한마디로 나 같은 딸을 감당하기가 버거운 분이다.
엄마가 원하는 딸이 되어주지 못해 항상 미안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저자는 결국 지금의 본인을 만든 건 엄마라 했는데, 생각해보니 중학생인 내게 조안 리의 책과 그때 막 1권 초판이 나온 한비야의 책을 사다 준 건 엄마였다. 이런 저런 이유로 비행기 타기를 주저할 때 결국 가라고 해준 것도 엄마였다. 니가 멋지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니 능력 마음껏 펼치라고, 그래서 세계를 누비는 멋진 여성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 것도 엄마였다(물론 생각하는 방향은 좀 달랐던 것 같지만).
책임전가를 하려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미안해왔던 나는 앞으로 더 미안해질 예정이고, 다만 내가 조금 덜 미안하고 엄마가 조금 더 편안할 수 있는 방법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을 뿐이다. 단시간에 변화가 컸던 만큼 크게 부딪힐 수 밖에 없었던 저자와 달리 나는 이미 10대 이후 누누이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과 미래에 대해 말해왔기 때문에 저렇게 큰 충돌은 없을 거다. 하지만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것 같아도 마음 속에서는 내가 그러지 않았으면, 마음을 고쳐먹었으면 하고 생각하시는 걸 안다. 전혀 이해되지 않지만 날 위해 이해하려고 노력하시는 걸 안다. 그걸 알면서 나는 변할 생각이 없다. 그러니 더 미안한 것이다.
여태 너 좋을 대로 살았으니 이제 좀 평범하게 살 때도 되지 않았니.
저자의 엄마가 저자에게, 우리 엄마가 내게 한 말이다.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아 놀랐다. 평범한 것의 정의를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남들 하는 거 맞춰서 적당히 살아가는 게 평범이라면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 엄마는 내가 그랬으면 좋겠냐... 엄마 마음이 어떤 건지 잘 알면서 이따위로 대꾸했던 것을 기억한다. 물론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저렇게 말하지 말 걸 그랬다. 아니 말 하는 게 맞았던가.
중요한 건 저쪽 모녀나 이쪽 모녀나, 앞으로 맞춰가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언제나 엄마가 엄마라는 직책에서 자유로워지길, 날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봐주길 바랐는데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딸로서만 엄마를 대했다. 투정부리는 것도 딸이기 때문이었고, 내 삶이 엄마에게만은 죄스러웠던 것 역시 딸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의 굴레를 벗어나는 당당함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진정으로 엄마에게 날 인정받기 원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책을 읽고 돌고래를 만났을 때 이 책에 대한 호불호가 크게 갈릴 것 같다고 했더니 역시나 그렇단다. 다 갖추고 신선놀음 한다던가, 일일이 나열하기 귀찮은 이러저러한 평들이 있겠지. 사실 그녀의 현재 라이프스타일은 나와 맞지도 않고(나는 친 생태적인 인간이 절대 아니다) 삐딱선을 타고 보면 걸고 넘어갈 게 많은 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인생은 누구에게나 1인칭 시점이라는 것이다. 본인을 삶을 깨부수고 새로 태어나는 건 그 출발점이 어디든 간에 누구에게나 어려운 도전이다.